[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89>“그러길래 내가 뭐라고 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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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기질이 다분한 여성들이 있다.

특정 상황을 만나면 예언자로 변한다. 남자친구 혹은 남편과 함께 예기치 못한 일에 부딪혔을 때가 그렇다.

큰마음 먹고 찾아간 식당의 음식이 실망스러울 때, 3시간 가까이 하품만 하다가 극장을 나설 때, 교통정체가 심한 휴일 오후 자동차 안에서 꼼짝할 수 없을 때, 그녀의 입에서 ‘그 한마디’가 나오고 만다. “그러길래 내가 뭐라고 했어?”

말문이 막힌 그가 허둥대는 사이 여자의 예언 확인이 이어진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고집 부리더니 이게 뭐야?”

남자는 고집을 부린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을 뿐이다. 심지어 모든 사태의 출발점은 ‘그녀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식당이나 영화, 주말 외출에 이르기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여자가 뭐라고 한 것 같기도 하다. “여기보다 유명한 식당도 있던데”라거나 “영화 상영시간이 엄청 기네”, “토요일이라서 많이 막히지 않을까?”

애매한 말이지만 나름의 예언이며 만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론 착각이며 ‘후견지명 효과(hindsight effect)’일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하자면 ‘남의 탓’이다.

여성의 남 탓은 불안해서다. 스스로의 선택에 확신을 못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신감이 없을 때일수록 오히려 독선적인 면모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불안을 들키기 싫어서다. 반면 여성은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 가까운 사람과 불안을 나누려는 경향이 있다.

다만 자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자기 속도 그만큼 상한다. 여성이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부리는 짜증은 혼자 속 편하려고 덤터기 씌우는 것만은 아닌 셈이다.

미국 심리학자 칼라 매클래런은 최근작 ‘감정읽기’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움이나 걱정, 비통함 같은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해 무시하거나 은폐하는 것은 물론 다른 감정으로 전환하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길래 내가 뭐라고 했어?’ 같은 반응 또한 두려움의 전환 또는 분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 특유의 예언 확인을 ‘누구의 잘잘못인지 따져보자’는 도발로 받아들이면 백이면 백 다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감해주는 대답으로 둘 사이의 거북한 분위기를 바꿔줄 수 있다. 몇 마디 말이면 그녀의 굳은 표정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게 해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너무 열받지는 말자.”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그녀를 무시하거나 상처 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의지가 분명하게 전해진다면, 불안에서 촉발된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상복 작가
#예언자#후견지명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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