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기욱]좀 더 과감한 실리, 실용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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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10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을 보며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간 일본의 지인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하고는 결국엔 뭔가 돌파구를 만들겠지만 한국은 계속 고집을 피우면 다음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이대로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언이 현실화된 느낌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시종 굳은 얼굴로 어색한 만남을 했고 본격적인 관계 개선까지는 험난한 파고가 예상되지만 2년 반 만에 이루어진 정상회담의 의미를 축소할 수는 없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 등에 ‘다른 의견’이 있다고 동의한 것은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영토 문제가 존재함을 인정해 달라’는 중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으로서는 가장 까다로울 수도 있는 중국을 상대로 아베 총리의 ‘적극적 평화주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중일 정상회담 직전에 북한은 장기간 억류해온 미국인 두 명을 석방했다. 미국으로선 2년간 끌어온 자국민 억류 문제를 해결했고 북한은 그동안 요구해온 미국 장관급 인사의 방북을 이끌어내는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이번 석방이 미국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를 바꾸는 신호라거나 북-미 관계의 해빙무드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오랜만에 정부 간 접촉을 통하여 현안을 해결한 것은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한국도 이에 질세라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함으로써 지속적으로 ‘경제 영토’를 넓히고 있다. 특히 북한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기로 함으로써 공단에 입주해온 중소기업들에는 중국에 수출할 길이 열렸다.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면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푸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치는 동북아 질서 속에 뭔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와 원자로 재사용에 대한 양보를 얻어냈지만 ‘사드’ 배치를 수용하지 않은 데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남아 있다. 동북아에 미국의 사드 배치를 강하게 반대하는 중국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며 자칫 미중 간 전략적 불신과 경쟁의 피해를 볼까 우려스럽다.

중국은 한국과의 대일 역사 공조를 강조하고 시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하는 등 ‘매력 공세’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와 별개로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도 하고 북한 문제 등 전략적 가치가 있는 문제에 대해선 큰 입장 변화가 없다. 북한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노력과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대중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대북 접촉을 확대하는 가운데 중국과는 역사전쟁을 하면서도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나름대로 유연성을 갖춘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3년 차를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외교 안보 성과를 냉정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은 전략적 카드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 왜 주요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좀 더 과감한 실리, 실용외교가 필요하다. 과거사, 신뢰, 인권 등 주요 가치와 원칙은 지켜야 하지만 국익을 감안한 전략적 유연성을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과거사와 비핵화만 해도 대일 대북 외교에서 중요한 원칙의 문제이지만 필요하다면 다른 사안과 분리하여 접근하는 투 트랙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반성 없는 일본’과 ‘신뢰할 수 없는 북한’만 탓할 만큼 현 정세가 녹록지 않다.

한국의 외교안보는 참으로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한미 동맹, 남북 관계, 대중·대일 관계는 서로 얽혀 있으며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이 강해야 대중 전략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고 역설적이지만 대중·대일 관계가 좋아야 대일·대중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다. 필요하다면 북한 역시 동북아 지역에서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원칙에 기반한 한국형 전략적 인내를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합종연횡하는 안보 상황에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유연성을 갖춘 능동적 외교를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의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제안은 시의적절하다. 박 대통령은 야심 차게 주창한 동북아 평화구상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임기를 끝내서는 안 될 것이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실용외교#중일 정상회담#자유무역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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