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음의 날’을 정한 아버지와의 담담한 동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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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윌리 오스발트 지음/김희상 옮김/176쪽·1만1800원·열린책들

“아버지는 다음 주 목요일을 죽음의 날로 정했다.”

지적이고 냉철한 분석가이며 늘 토론을 즐겼던 아버지. 활기 넘치고 꼿꼿하게 모든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끌었던 아버지. 남에게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아버지. 식품 전문기업인 크노르와 스위스 최대 미디어 기업 링기어의 대표이사를 거쳐 스위스 군대 개혁위원회를 맡아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도 늙고 병드는 세월의 흐름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아흔의 나이에도 열정적인 아버지를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배뇨 조절이 안 돼 요도에서 오줌 빼는 관을 달고, 산책하다가 갑자기 쓰러질 정도로 자신의 몸을 관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아버지는 ‘자유 죽음’을 선택한다.

‘자유 죽음’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천사’라는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의 몇몇 나라와 미국의 일부 주에서 허락된 ‘존엄사’를 의미한다. 이 아버지는 뇌종양 같은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더이상 존엄이 허용되지 않는 삶에 염증을 느껴 ‘죽음의 천사’를 선택했다.

늘 두 아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요구했던 아버지. 그래서 불화했고 갈등을 빚었던 부자 관계. 저자인 둘째 아들은 1년 동안 아버지를 돌보며 존경하면서도 불편했던 아버지와 진정한 화해를 한다. 그 과정을 감정의 과잉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아버지는 죽음의 천사라는 약을 먹기 전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으며 부족한 것은 없었다. 내 두 아들이 바로 내가 누린 행복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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