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어둠은 생명의 쉼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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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을 찾아서/폴 보가드 지음·노태복 옮김/464쪽·2만 원·뿌리와 이파리
인공불빛 공해로 사라진 밤의 가치… 자연친화 정도따라 1∼9등급 분류
우주가 내린 황홀한 교향곡 들려줘

2014년 5월에 찍은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정상의 밤 풍경. 인공의 빛이 가득한 서울에선 몇 자락의 별빛도 제대로 허락하지 않던 밤하늘이 이곳에선 검은 비단에 소금이라도 흩뿌려놓은 듯 환상적인 세계를 선사한다. 정선=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014년 5월에 찍은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정상의 밤 풍경. 인공의 빛이 가득한 서울에선 몇 자락의 별빛도 제대로 허락하지 않던 밤하늘이 이곳에선 검은 비단에 소금이라도 흩뿌려놓은 듯 환상적인 세계를 선사한다. 정선=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어둠이란 참 오묘한 존재다. 흔히 밤경치가 근사하다고들 하지만, 막상 칠흑같이 검은 밤을 맞닥뜨리면 그만큼 두려운 게 없다. 인류의 진화라는 것도 불(혹은 빛)을 발견해 어둠과 맞설 무기를 획득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만큼 미지의 영역이었던 밤을 정복하는 일은 인간의 숙명과 직결된 역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환경 전문 작가인 저자가 볼 때, 너무 정도가 지나쳤던 ‘밤의 추방’은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지구를 생채기내고 있다. 낮이 가면 밤이 오는 게 순리일진대, 이를 억지로 몰아내며 잃은 게 너무 많다. “어떤 면에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이제야 알기 시작했지만, 밤의 자연스러운 어둠은 우리의 건강은 물론이고 자연계의 건강에도 늘 소중한 요소이기에 어둠이 사라지면 모든 생명이 고통을 받는다.”

‘잃어버린…’의 애절한(?) 여행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밤을 말살한 빛 공해는 지금 어느 지경까지 와 있는가. 도대체 밤이 사라지면 뭐가 나쁘다는 건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려 저자는 가장 밤낮이 구분 안 가는 곳부터 완전히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까지 차례차례 가보기로 했다. 다만 미국인답게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어둠에 집중한다’는 취지에서 여정은 북미와 서유럽에 집중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존 보틀이란 천문학자의 척도를 따라가는 것. 이 학자는 어두운 밤하늘을 1∼9등급으로 구분했다. 대도시의 불야성을 9라고 하면, 인위적 불빛 없이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수준은 1이라는 식이다. 책은 9에 해당하는 곳부터 반대로 짚어가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차례에서 챕터 순서가 9에서 1로 거꾸로 된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반, 글 풀어내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아니 내공이 요즘 말로 ‘만렙(게임에서 최고 레벨에 오른 경지)’이다. 밤과 관련해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았나 싶어 책장을 넘길수록 입이 쩍 벌어진다. 딱히 여행서나 과학책, 역사나 철학책이라고도 규정할 수 없게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별빛 찬란한 밤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예를 들어, 9, 8등급 장에선 휘황찬란한 카지노의 도시인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같은 대도시를 찾았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선 빛 공해로 인한 피해와 그 속에서 별빛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더니, 런던에 넘어가선 지금도 남아있는 가스등을 통해 근대 조명의 역사를 되짚는다. 그리고 훌쩍 파리로 향하더니 도시의 불빛이 문화와 조우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다음 장에선 또 분위기가 다르다. 도심을 벗어나 주택거주지역을 돌며 야간조명의 효용성에 대해 거론한다. 사실 대다수 사회에선 ‘안전과 치안’을 명목으로 밤을 밝히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런데 실제 연구에 따르면 가로등과 범죄율은 별 상관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지나친 불빛이 시력마비와 은폐 공간 증가를 야기해 문제를 키웠다. 이 때문에 최근 서구사회는 오히려 밤 불빛을 줄이는 작업에 나선 곳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인공의 빛이 사라진 땅에 우주가 내려준 황홀한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광경을 근사하게 그려낸다.

물론 이미 21세기도 10여 년이 지난 지금, 밤을 다시 ‘깜깜하게’ 되돌리기란 요원한 일이다. 밤을 낮 삼아 일하는 수많은 ‘미생’들에겐 저녁이 있는 삶조차도 버거운 꿈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동화책에서나 배우는 세상이 될지 모른다. “수많은 빛을 들고 다니느라 어둠 또한 꽃피고 노래함을 알지 못한다면” 그게 올바른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밤의 가치를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됐다. 밤은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별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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