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타이거즈, 2010년대 라이온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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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야구는 2002년 전후로 나뉜다. 이전까지 삼성은 준우승 전문이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OB(현 두산)에 진 것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7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눈물을 흘렸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이 유일한 우승이었다. 올해 사상 첫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삼성으로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어두운 역사다. 4연패를 이끈 류중일 감독도 선수 시절에는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보지 못했다.

▽당시 삼성을 만만하게 봤던 팀이 해태(현 KIA)였다. 삼성은 1986년과 1987년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빨간색 상의-검은색 바지의 해태 선수들에게 번번이 막혔다. 1986년에는 1승 4패, 1987년에는 4전 전패를 당했다. 해태는 1988년과 1989년에도 우승하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1980년대는 해태 왕조의 최전성기였다.

▽같은 4연패지만 해태의 정규시즌 1위는 1988년 한 번밖에 없었다. 나머지 3번은 플레이오프 등을 거쳐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다. 삼성뿐 아니라 단기전에서는 해태를 당할 팀이 없었다. 빨간 유니폼의 사나이들은 왜 가을만 되면 더욱 힘을 냈을까. 당시 해태의 중심 타자였던 김성한 전 KIA 감독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팀이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일단 기싸움에서 이기고 들어갔다”고 했다. LG 감독을 지냈던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헝그리 정신’을 꼽았다. 이 위원은 “선수들끼리 ‘이번 겨울 좀 따뜻하게 보내자’라고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모기업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연봉 상한선도 25%로 정해져 있던 시절이라 우승이라도 해야 돈을 만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의 해태와 2010년대의 삼성은 많이 다르다. 당시 해태는 두말이 필요 없는 스타 군단이었다. 투수진에는 ‘국보 투수’ 선동열과 ‘가을까치’ 김정수가 있었고 이순철-김성한-김종모-한대화-김봉연으로 이어지는 타선 역시 피해 갈 곳이 없었다. 삼성에도 이승엽과 임창용 등 스타 선수가 많지만 이름값에서는 당시의 해태에 미치지 못한다. 한때 삼성을 ‘밥’으로 봤던 해태의 레전드(전설)들은 동기 부여와 함께 삼성이 강해진 이유로 시스템을 꼽았다. 이 위원은 “삼성 선수들을 보면 의욕에 넘쳐 경기를 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야구만 잘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게 큰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전 감독은 “선수 면면만 보면 준우승을 한 넥센이 앞섰다. 하지만 삼성은 누군가 빠져도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는 선수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해태가 선수들의 힘으로 우승했다면 삼성은 시스템으로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둘은 입을 모아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고 했다. 이번 한국시리즈의 승패를 가른 것도 경험과 마인드의 차이였다는 것. 실제로 삼성은 뒤지던 경기를 막판에 뒤집곤 했지만 넥센은 결정적인 순간 실책을 남발하며 자멸했다.

올해 처음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던 삼성의 신예 박해민은 경기 전 떨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주위의 형들을 보니 누구 하나 긴장하는 사람이 없더라. 각자 자기 할 것만 알아서 하자는 분위기였다. 이 덕분에 나도 평소처럼 경기장을 누빌 수 있었다.” 해태 왕조는 KIA 시절까지 합쳐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10번 우승했다. 지금 분위기라면 2002년 이후 7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삼성 왕조는 머지않은 미래에 해태를 넘어설 것 같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타이거즈#라이온즈#삼성#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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