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칼럼) 환경호르몬과 당뇨병

  • 입력 2014년 11월 13일 13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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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이 ‘유행’이다. 그러나 당뇨병은 옮는 전염병이 아니다. 전염되지 않는 병이 왜 유행병처럼 갑자기 흔해졌을까? 당뇨병은 과거 선진국의 병으로 여겨졌다. 잘살게 되면서 나태해져 티비나 보고, 운동은 하지 않고, 과식해 뚱뚱해져서 당뇨에 걸리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당뇨병은 근래 개발도상국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못살던 사람들이 조금 먹고살 만하고 편해지니, 배가 나오고 당뇨병에 걸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도 비슷하다.


COLUMNIST 이홍규 교수

당뇨의 주범은 환경오염

정말 많이 먹어서, 운동을 하지 않아서 당뇨병에 걸리는 것일까? 그런 이유도 없지 않지만, 진짜 문제는 음식물과 공기,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쓰는 농약과 자동차 매연, 싼 옷과 그릇들을 만들고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플라스틱 등이 주범이다.

환경오염이 당뇨병과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제법 오래되었다. 많은 학자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증거를 처음 분명하게 내놓은 학자는 놀랍게도 경북대학 의과대학의 이덕희 교수다.

이 교수는 미국 보건부가 국민건강영양조사의 일부로 시행한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환경오염물질의 혈중 농도 계산’에서 당뇨병 환자가 당뇨병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각종 환경오염물질의 혈중 농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2006년 미국 당뇨병 학회지에 발표된 이 논문은 전문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증거가 나왔다. 그에 따라 환경단체들은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2011년 미국 독성연구소와 국립보건원은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회의를 소집하고, “환경오염물질들이 당뇨·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다만 자가면역 질환으로 여겨지는 소아·청소년 당뇨병에 대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그러나 이 역시 환경오염물질에 의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는 이 공로만으로도 이덕희 교수가 노벨 의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뇨병과 비만 그리고 많은 관련 질환들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물질들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들어와 있는 것들을 빼내면 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뇨병과 비만증으로 발생하는 합병증들로 고통을 받고 있는가.


환경호르몬의 농도를 측정해서 당뇨의 위험성 판단

환경오염물질들이란 실제 어떤 것들일까? 가장 유명한 것이 다이옥신이다. 월남전에서 사용하려고 고엽제를 만들 때 뜻하지 않게 만들어져서, 많은 군인이 당뇨병 등에 걸렸었다.

이런 물질들은 쓰레기를 소각할 때도 나오고 자동차 매연으로도 나와 문제가 되고 있다. 덜 유명하지만, 다이옥신과 비슷한 것들도 많고, 여러 면에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그래서 유엔에서는 이런 물질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피씨비(PCB), 디디티(DDT) 등 다소 생소한 화학물질들인데, 무색무취하고 워낙 적은 양이라 측정해 내기도 어렵다.

그리고 금지되지 않은 여러 가지 다른 화학물질들도 독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농약들이 대표적인 예인데,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못쓰게 하는 디디티를 중국과 인도에서는 모기를 잡기 위해 아직 사용하고 있다.

환경오염물질들이 원인이라면 그런 것들을 못 쓰게 하면서 점차 줄여가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당뇨·비만은 계속 늘기만 하는가?

답은 이런 환경오염물질들이 우리 주변 땅에 남아있고, 서서히 몸속으로 농축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우리 몸속에 이런 물질들이 더 많아진다.

게다가 새로운 화학물질들이 속속 새롭게 만들어지고 쓰이는데, 한참 쓰고 나서야 독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매년 약 1만여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환경오염물질들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각종 호르몬의 활동에 장애를 일으킨다. 가령 여성호르몬의 작용에 장애를 일으키는데, 그래서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변 환경에 있으면 ‘환경오염물질’이지만, 우리 몸에 들어와 나쁜 짓을 하면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이런 환경호르몬들이 인슐린이란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면 ‘인슐린 저항증’이 생긴다.

이런 물질은 인슐린의 분비도 잘 못되게 만든다. 당뇨병이 생기는 이유다.

그러므로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1) 이런 환경호르몬들이 몸에 들어오지 않도록 2) 들어와 있는 것들은 배출시키도록 해야 한다.

물과 공기가 맑은 시골로 가서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서 살면서 환경호르몬 배출에 도움이 되는 채식을 하면 당뇨가 좋아지는 이유다. 환경호르몬들은 소와 돼지고기 등 육류와 생선 등에 많다. 그중에서도 기름에 녹아있으니까, 기름진 어류·육류는 피하는 것이 좋다.

필자는 혈액 속의 환경호르몬 농도를 측정하는 쉬운 방법을 개발하여 그 농도가 높으면 당뇨병에 잘 걸린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농도가 높으면 합병증도 더 잘 생긴다.

이 검사법의 실용화까지는 자본과 시간이 들겠지만, 새로운 치료법과 예방법을 만드는 기반기술이 될 것이다. 당뇨병의 예방과 완치가 가능한 시대가 곧 올 것이다.


을지병원 이홍규 교수

을지대학교 을지병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소아청소년 당뇨병협회 명예회장
Journal of Diabetes Investigation 편집위원
前 대한 내분비학회 이사장, 회장
前 대한 당뇨병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대학원 내과학 전공(의학박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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