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공부에 시달리던 학생들, 자작시 책으로 엮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인천여중 ‘댓잎들의 속삭임’ 발간
시낭송 대회 열어 자축행사

인천여중 학생과 교사들이 최근 발간한 시집 ‘댓잎들의 속삭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학생들은 손수 만든 솟대와 시집을 판매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 인천여중 제공
인천여중 학생과 교사들이 최근 발간한 시집 ‘댓잎들의 속삭임’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학생들은 손수 만든 솟대와 시집을 판매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 인천여중 제공
“시인처럼 글이 매끄럽진 않지만 우리의 눈에 비친 세상을 담았죠.”

지난달 31일 오후 인천 연수구 원인재로 인천여중 5층 다목적실. 이 학교 전교생 600여 명이 직접 쓴 자작시 가운데 100여 편을 추려 만든 시집인 ‘댓잎들의 속삭임’ 발간을 기념하는 북 콘서트가 열렸다. 음악부 학생들이 연주하는 피아노와 플루트 선율에 맞춰 1∼3학년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16명의 학생이 그동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해 탈고한 시를 또박또박 낭송했다.

“공공공공공공공공공공 공이 열 개 백만장자라면 착취당하고 가난하여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 백만 명 사랑과 자비란 정신을 지닌 종교 때문에 싸우는 지역 희생자 백만 명 매일매일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우리나라 서민 백만 명 모두를 도와줄텐데 온 세상에 백만 송이 꽃 피울 텐데.”(‘백만장자라면’)

이어 학생들의 어머니 3명이 화답하는 뜻에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 등 3편의 시를 낭송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이 학교가 전교생에게 수업시간을 쪼개 시를 쓰게 한 것은 2012년부터. 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과 풍부한 감성, 창의력 등을 길러주기 위해서였다. 그해 발간한 첫 시집 ‘우당탕 점심시간’에 이어 지난해에는 ‘인여(인천여중) 아이돌의 치명적인 매력에 대하여’를 연달아 냈다. 요즘 중학생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 우정, 사랑, 정의, 분노, 불편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모든 감정이 들어 있다.

학기 초에 학생들이 저마다 주제를 결정한 뒤 시를 써 제출하면 교사들은 시상(詩想) 전개방법과 어휘, 음율, 문맥 등을 바로잡아주는 등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첫 시를 제출할 때 혹시 자신이 숨겨 둔 감정이나 어설픈 문장력이 노출될까 봐 조바심을 내던 학생들은 작품이 한 편 두 편씩 늘며 자신감이 붙었다. 숙제를 내지 않았는데도 국어교사에게 여러 편의 자작시를 보여주며 평가해 달라고 요구하는 학생을 비롯해 장래 희망을 시인으로 바꾼 학생들도 생겨났다.

올해에는 학생들에게 시 쓰기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한 가치를 가르쳤다. 극심한 기아와 질병 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해 공동체의 안녕과 행운 등을 기원하는 솟대를 만들기로 했다. 학생과 교사들이 미술시간 등에 나뭇가지와 솔방울 등을 이용해 틈틈이 만든 ‘희망솟대’ 200여 점을 이날 시집과 함께 판매해 210여만 원을 모았다. 수익금은 전액 유엔 산하 아동지원단체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공부에 시달리는 친구들을 위로하는 내용의 시 ‘어깨를 펴’를 쓴 2학년 옥민주 양(14)은 “북 콘서트를 통해 모은 우리들의 작은 정성이 지금 이 순간에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며 “내년에도 시집 발간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관식 교감은 “학생들이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둔 채 드러내지 못했던 솔직한 생각들을 시를 통해 표현하는 과정에서 많이 성숙해졌을 것”이라며 “시집을 통해 사춘기를 겪는 중학생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자녀를 이해하고, 지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인천여중#자작시#댓잎들의 속삭임#시낭송 대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