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개월 이념갈등 한미FTA… 30개월 차분했던 한중FTA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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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타결]한미 FTA와 차이점
경제 파급효과 더 클 한중FTA… 한미FTA 같은 극렬 반대 적어
타결소식에 농민-시민단체 반발… “韓美때보다 농업피해 5배 추정”

30개월에 걸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은 FTA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정치·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협상 개시부터 발효까지 73개월 동안 이념 갈등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한미 FTA 당시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를 두고 ‘좌파=반미(反美)’라는 등식이 통하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이념 지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경제적 파괴력은 크지만 이념 갈등은 잠잠

10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중 FTA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세계 주요 경제권과 맺는 통상협정이라는 점에서 한미 FTA와 무게감이 비슷하다. 하지만 수출기업, 농민 등 이해관계 당사자들 외에 협상기간 내내 사회적 관심도는 낮은 편이었다.

한미 FTA는 협상의 내용보다도 상대국이 미국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 일각의 반미 감정과 맞물려 정치적 이슈로 비화됐다는 게 통상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의 거듭된 설득에도 불구하고 농민들과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나라를 팔아버리는 굴욕 협상”이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 4월 타결됐지만 이후에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논란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한미 FTA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협상 타결부터 발효까지 무려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한중 FTA 협상 때는 한미 FTA 당시 자주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던 시위 단체들이 거의 종적을 감추다시피 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이 간간이 관련 질의를 했지만 한중 FTA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는 일은 없었다.

이에 대해 한미 FTA로 심각한 사회갈등을 겪고 난 뒤 FTA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상당 부분 정돈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미국, 유럽연합(EU) 등과 협정을 맺으면서 우리가 FTA 자체에 익숙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과거에 체결한 FTA들을 생각해보면 일부 세력이 걱정했던 것만큼 실제 손해 본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실제 개방 수준도 높지 않아

한미 FTA 때보다 개방 수준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 점도 ‘상대적 무관심’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한중 FTA에서 20년 내 관세철폐 비중은 한국이 92%(품목 수 기준)로 한미, 한-유럽연합(EU) FTA 때의 96%보다 낮다. 특히 쌀을 비롯해 농산물 중 민감 품목이 상당 부분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우리는 농업, 중국은 제조업 등 서로 민감한 부분을 보호하려다 보니 한미 FTA와 비교했을 때보다 낮은 수준의 협상에 그쳤다”면서 “다만 협정문이 공개되고 협상 내용이 다시 부각되면 한미 FTA 때만큼은 아니어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진통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날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농민·시민단체 사이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농업과 중소기업 파탄을 불러올 한중 FTA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한중 FTA가 체결되면 농업 피해 규모는 한미 FTA의 최대 5배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연구기관 관계자는 “연구 시점이 오래전이고 개방 수준을 대폭으로 전제했던 당시와 실제 협상 결과가 크게 달라져 판단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중 FTA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됨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뉴질랜드, 베트남 등과의 협상을 마무리짓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한중일 FTA 참여도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FTA는 두 나라 외교관계가 악화되면서 2012년 이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이상훈 january@donga.com·박창규 기자
#한중#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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