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몰라”… SNS도 이젠 익명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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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서 새 트렌드 떠올라

미국에서 대표적 익명 SNS로 꼽히는 위스퍼 이용 화면. 엽서를 쓰듯 그림 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는 방식이다. 거리, 
관심사 등에 따라 메시지를 선별해 볼 수 있지만 모든 메시지는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없다. 스마트폰 화면 캡처
미국에서 대표적 익명 SNS로 꼽히는 위스퍼 이용 화면. 엽서를 쓰듯 그림 위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는 방식이다. 거리, 관심사 등에 따라 메시지를 선별해 볼 수 있지만 모든 메시지는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없다. 스마트폰 화면 캡처
최근 국내외에서 익명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급성장하고 있다. SNS의 3원칙으로 여겨졌던 참여·공유·개방은 옛말이 됐다. 이용자들은 특정 구성원끼리만 내용을 공유하는 폐쇄형 SNS를 넘어 익명형 SNS로 이동 중이다. 업계에서는 지나친 개방성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 피로감을 느낀 이용자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 폐쇄형 SNS에 ‘익명’을 더하다

국내 대표적인 익명형 SNS는 ‘블라인드’다. 특정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모여 익명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바일판 사내 익명게시판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처음 서비스를 시작해 불과 1년 사이 정보기술(IT) 금융 항공 유통 미디어 등 다양한 업계에 확산됐다.

현재 블라인드가 개설된 직장 수는 55곳. “우리 회사 블라인드를 열어 달라”는 직장인들의 요청이 어느 정도 쌓여야 블라인드를 개설하는데 지금까지 한 달 평균 4곳의 블라인드가 만들어졌다. 블라인드 정영준 공동대표는 “몇몇 회사에서 자체 익명게시판을 운영 중이지만 회사 보안팀 감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며 “감시와 통제 밖에서 소통을 원하는 직장인들이 많아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블라인드는 내부 직원이라도 누가 쓴 글인지 추적할 수 없게 시스템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서버를 통째로 들고 가도 글쓴이를 추적할 수 없다는 게 블라인드 측 설명이다. 초기 커뮤니티를 개설한 직장 10곳 중 8곳은 전체 직원 중 80%가 가입해 활동할 정도다.

이 밖에도 같은 학교 학생들이 모여 익명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우리학교 삐야기’, 업종별 직장인들이 모여 직장 평판과 연봉 등을 공유하는 ‘컴퍼티’, 불특정 다수와 익명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센티’ 등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익명형 SNS다.

○ 치솟는 익명형 SNS 기업가치

익명형 SNS는 해외에서도 인기다. 미국에서 10, 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시크릿’ ‘위스퍼’ 등이 대표적이다. 시크릿의 경우 페이스북이 최근 인수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IT 전문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시크릿의 기업가치는 4000만 달러(약 420억 원), 위스퍼의 기업가치는 2억 달러(약 2100억 원)에 이른다. 두 곳 모두 미국 내 유명 투자자들이 앞다퉈 거액을 투자했다.

시크릿은 주변 사람들끼리 익명 메시지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배경화면 사진을 선택한 뒤 그 위에 메시지를 남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익명으로 전파된다. 이용자들은 ‘내가 아는 누군가가 쓴 메시지’라는 것 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댓글을 달거나 페이스북의 ‘좋아요’ 기능처럼 ‘하트’를 줄 수도 있다. 위스퍼도 불특정 다수와 메시지를 공유한다는 것 외에는 비슷한 시스템이다. 2km, 10km 등 현재 나의 위치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남긴 메시지들만 보게 설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피로감

업계에서는 전통적 SNS 방식이 ‘쇠퇴’ 단계에 들어섰다고 보고 있다. 실명 정책을 고집해왔던 페이스북도 지난달 익명으로 채팅할 수 있는 앱 ‘룸’을 출시했다. 해외 언론들은 이를 두고 “페이스북도 대세를 따르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익명 SNS로 이용자가 이동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피로감과 기업의 마케팅 등 상업적 이용자들의 급격한 증가가 원인으로 꼽힌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처음에는 SNS 대원칙 중 하나인 개방을 통해 대중이 흥미를 느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피로감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데 수반되는 자기 검열 등 방어적 심리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익명이라는 도구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SNS#익명#폐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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