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돌파구 열리는 北-美, 中-日 관계 지켜만 볼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청일전쟁 발발 120년인 올해, 한반도를 둘러싸고 먹구름이 뒤덮였던 동북아 정세에 새 국면이 전개되는 조짐이다. 과거사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로 대립하던 중국과 일본은 오늘 베이징에서 개막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년 6개월 만에 양국 정상회담을 갖는다. 북한은 미국 특사로 방북한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 편에 그동안 억류해 온 미국인 두 명을 전격 석방했다. 동북아에 훈풍이 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한국을 제외한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외교 당국자들이 얼마나 치밀한 전략으로 대비해왔는지 의문이다. 남북 관계, 한일 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 한국으로선 자칫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7·7사변(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 기념식 때만 해도 ‘일본 도적(日寇)’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얼굴을 맞대는 것은 2012년 9월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선언 이후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의 해빙을 뜻한다. 중일의 4개항 합의 중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로 향한다는 정신에 입각해 양국 관계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 장애를 극복해 나가자는 데 일부 합의를 이뤘다’는 부분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 문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일 관계의 이런 진척은 과거사 문제를 놓고 중국과 대일 공조를 예상했던 한국으로선 허를 찔린 것과 다름없다.

북한이 장기간 억류했던 미국인들을 모두 풀어준 것도 예사롭지 않다. 클래퍼 국장은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연방수사국(FBI) 등 16개 정보기관의 수장(首長) 역할을 하는 최고위 정보기관장이다. 미국은 그의 방북을 우리 정부에 알려주지 않았고, 알려진 다음에도 일체의 석방 대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클래퍼 국장은 미국인 석방을 위해 방북했던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는 달리 현직이다. 오히려 북핵을 비롯해 북-미 관계 전반에 걸쳐 깊은 대화를 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또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등 민감한 이슈도 논의했을 수 있어 한국은 과거처럼 북-미 대화를 귀동냥하는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럽다.

정부가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다고 믿고 현상을 안일하게 판단한다면 외교적 낭패를 볼 수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로 교착상태에 있는 한일 관계를 이대로 두어도 될지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 양국 간에는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 군사정보 공유, 북-일 납북자 교섭, 내년 수교 50주년 준비 등 논의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사는 따지되 한일 정상회담엔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외교에서 원칙만 강조하다 국익을 해쳐선 곤란하다. 오늘과 내일 열리는 한중, 한미 정상회담과 APEC에 뒤 이은 동아시아정상회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국제사회의 기류 변화를 파악할 기회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에 대응하는 기민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
#북한#미국#중국#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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