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FTA 비준 재촉한 청와대, 여당이 하청업체로 보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나기 직전인 어제 오전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지 않으면 우리는 최대 8년간 일본보다 관세 철폐 속도가 뒤처진다”며 조속한 비준을 촉구했다. 한국은 호주와 올해 4월 FTA를, 일본은 올해 7월 호주와 경제동반자협정(EPA)을 맺었다. 체결은 우리가 빨랐지만 일본이 이달 안에 의회에서 비준하면 발효는 더 빠를 수 있다. 일본이 먼저 협정을 발효시킬 경우 자동차 같은 경합 품목에서 호주 시장을 선점해 한-호주 FTA의 효과는 크게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청와대와 정부가 국회에 FTA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고도 한 달 넘게 별다른 얘기를 않다가 이제 와서 비준을 압박한다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가 주요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당에 미리 설명하지 않고 뒤늦게 국회 처리만 독촉한다”는 것이다. 여야와 정부는 그제 한-호주와 한-캐나다 FTA로 수조 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축산농가 지원대책을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주 의장은 7일 당정청(黨政靑) 실무정책협의회에서도 청와대와 정부 측 인사들에게 “중요 사안들을 당에 떠넘기려고 하지 말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국회는 대통령 밑에 있는 참모가 아니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과 국민이 만들어준 여당에 청와대수석이 하청업체 대하듯 대통령의 과제를 던져주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를 연상케 한다. 지난해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때도 청와대 참모진이 내각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이제는 여당에까지 군림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무상급식과 누리과정을 둘러싼 무상복지 혼란이 벌어지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공무원들의 조직적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여당과 정책 협의를 하기는커녕 제대로 설득도 못하는 청와대와 정부가 야당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FTA#비준#청와대#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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