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아웃도어 의류를 위한 변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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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인간은 동물처럼 몸을 보호할 만큼 수북하게 털을 갖고 있진 않다. 맨몸은 이래저래 불편하다. 추위를 막을 수도 없고, 조금만 움직여도 이리저리 긁혀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우리는 옷을 입는다. 옷을 입는 행위는 피부의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다. 피부를 더 튼튼하게 하고 추위를 더 잘 견디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TV나 휴대전화를 통해 인간의 시각과 청각을 확대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인류는 옷을 진화시키기 위해 애써왔다. 더 강하고, 더 질기며, 더 따뜻한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20세기의 산업화는 화학섬유라는 획기적 진보를 가져왔다. 우리는 더 싸면서도 더 가볍고 튼튼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 21세기 들어서는 각종 기능성 의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요즘에는 심지어 물에 닿으면 얼음처럼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 옷까지 등장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왔던 최첨단 의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주인공 마티가 입었던 점퍼는 입는 사람의 체격에 따라 사이즈가 자동으로 조절되고, 물에 젖으면 자동으로 건조되는 기능을 갖췄다.

오늘날 기능성 의류의 최고봉은 단연 아웃도어 의류다. 여러 가지 신소재와 신기술이 투입된 아웃도어 의류는 가볍고 따뜻하며(또는 통풍이 잘 되며) 빗물 같은 외부 수분은 막아주면서 땀은 밖으로 배출한다. 방탄복 소재를 사용해 내구성을 극대화한 제품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아웃도어 의류 열풍은 등산의 인기가 높아진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아웃도어 의류의 여러 가지 기능적 장점에 호응한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해 동아일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기능성’이 아웃도어 의류 구매의 가장 큰 요인이란 점이 드러났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일상생활에서 등산복을 입는 행위’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시각 말이다. ‘해외여행을 떠난 한국 중장년들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는 내용의 신문 기고 글이 나온 적도 있다.

물론 산에 갈 때 입는 옷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입고 가는 행위는 분명 부적절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 앞서 얘기한대로 옷의 기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인류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세련된 패션의 대명사로 불리는 ‘트렌치코트’도 사실 멋 이전에 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다. 1차 세계대전 때 참호 안의 군인들을 추위와 비바람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탄생한 트렌치코트는 이후 패션의 영역으로 들어가 멋과 기능을 함께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옷이 됐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인의 ‘등산복 사랑’을 통해 의류 진화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장 백화점이나 아웃렛 매장에 가보자. 언제부터인가 ‘아저씨 잠바’는 사라지고 방수·방풍 점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또 아웃도어 의류는 우리가 ‘패션’이란 키워드에 집착하다 어느새 경시하게 된 옷의 기능적 측면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길에 나가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심히 살펴보자. 그들도 바람막이 점퍼 같은 기능성 의류를 많이 입는다. 우리와 다른 것은 울긋불긋한 색상보다는 파스텔 톤을 더 선호한다는 것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웃도어 의류의 패션성만 더 강화하면 되지 않겠는가. 아울러 가격이 지금보다 저렴해진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
#아웃도어 의류#등산복#기능성 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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