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88>우정과 ‘갑을’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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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세라는 드라마 ‘미생’의 지난주 방송분.

오 과장은 눈독을 들여온 기업의 책임자가 죽마고우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만세를 부른다. 계약서에 도장 찍는 일만 남은 셈. 하지만 막상 그를 찾아가니 분위기가 냉랭하다. 오 과장을 종일 기다리게 해놓고 컴퓨터 바둑을 두던 죽마고우가 혼잣말을 한다. “친구는 무슨.”

오 과장은 계약은커녕 수모만 당하고 이런 말까지 듣는다. “전에는 네가 갑이었고 내가 을이었잖아. 그래서 갑질 한 번 해봤어.”

직장인 생활 좀 해본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했을 대목이다. 학창 시절의 우정이 사회에서 갑을 관계로 뒤집히자 씁쓸해진다.

남자의 관계는 누가 갑이고 을인지를 따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반면 여자들 사이는 양상이 다르다. 갑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걸그룹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이 출연해 최근 화제가 된 일본 드라마 ‘여자들의 범죄 파일’에서 유명한 여의사가 결혼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돼 독살당한다. 용의자는 피해자가 간호사로 채용한 뒤 친구가 되었다는 여성이다. 직장의 갑을 관계로 만나 친구 사이가 된다는 건 남자들 세계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중에 드러나는 진실. 발단은 두 여자의 ‘자존심 승부’였다. 먼저 결혼한 간호사가 가족을 행복 어필 액세서리로 동원해 경쟁심을 유발했고, 이에 자극받은 여의사가 크게 성공한 남자와의 결혼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던 것.

그 결혼을 방해하려는 친구의 음모를 간파한 여의사가 싸늘하게 내뱉는다. “평범한 여자 주제에 어째서 나와 겨루려고 한 거야. 나를 질투할 자격도 없으면서.” 그 이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갑 앞에서는 체면 불고하고 납작 엎드리는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친밀함이라는 부드러운 커튼으로 수직 서열화의 위협을 덮어버린다. 우열 경쟁은 커튼 뒤에서 비공식적으로 벌어진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강지영은 드라마에서 과학수사 담당을 맡아 그간 쌓은 연기와 일본어 실력을 선보인다. 드라마에서 여자 형사들로만 구성된 수사7과는 범죄와 관련된 여자들의 내면세계를 파헤친다.

수사7과 멤버들 간에도 이런 말이 오간다. “여자가 예뻐지고 싶은 것은 남자 때문이 아니라 여자끼리의 경쟁심 때문이야. 여자는 비교하고 싶은 생물이거든. 누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여성 심리를 잘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는 최신작 ‘여자라는 생물’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여자에게 우정은 있는가.”

곧이어 답해 준다. “바보냐. 당연히 있지.” 남자와 약간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한상복 작가
#갑을#미생#갑질#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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