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본에 춤추고, 정치에 휘둘린 ‘동방의 할리우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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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 100년사/종보현 지음/윤영도·이승희 옮김/832쪽·4만8000원·그린비

1971년 개봉한 ‘당산대형’ 촬영 당시 리샤오룽(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감독, 조연들이 찍은 사진. 그린비 제공
1971년 개봉한 ‘당산대형’ 촬영 당시 리샤오룽(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감독, 조연들이 찍은 사진. 그린비 제공
저우룬파(周潤發), 린칭샤(林靑霞), 청룽(成龍)…. 이름만 들어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배우들이다. 이들을 낳은 것은 바로 한때 세계 3위 규모의 영화시장을 형성했던 홍콩 영화계다. 19세기 말 서양의 단편영화가 중국에 처음 들어왔던 시기부터 최근까지 홍콩 영화계의 역사를 담았다. 방대한 시각 자료와 통계가 인상적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 영화산업의 중심은 서양의 조계지였던 상하이였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모방한 제작사가 번성했고 스타 여배우가 등장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상하이 영화인들이 홍콩으로 대거 남하했고 영화 제작의 중심 역시 홍콩으로 옮겨왔다.

1950년대 동남아 자본의 유입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 무술영화의 서사 특성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황비홍’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둬 60여 편이 제작됐다. 하지만 과열경쟁이 붙으면서 ‘칠일선(七日鮮·7일 만에 영화 제작을 완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자본 대량생산이 난무하기도 했다.

1970년대 제작사 ‘골든하베스트’를 통해 리샤오룽(李小龍), 청룽, 훙진바오(洪金寶)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스타들이 발굴됐다. TV 산업이 발전하며 한때 주춤했던 영화계는 쉬커(徐克) 등 방송국 출신 감독과 TV에서 인기를 끈 스타들이 데뷔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해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0년대 말 중국 정부의 대만 정책이 변화하면서 ‘패왕별희’ ‘신용문객잔’ ‘동방불패’ 등 대만 자본으로 홍콩 제작진이 중국 현지에서 촬영한 합작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만 자금이 대량 유입되면서 배우 개런티가 부풀려지는 등 거품도 끼기 시작했다. 1997년 홍콩 주권 반환과 아시아 금융위기는 이 거품이 꺼지는 결정적 계기였다. 2003년 중국 대륙의 영화 시장이 홍콩에 완전히 개방되면서 점점 더 많은 홍콩 배우와 제작진이 중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2014년 현재 홍콩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홍콩 영화계 역시 이 소용돌이에서 멀리 있지 않다. 홍콩 정치·사회의 변화와 함께 성쇠를 겪어온 홍콩 영화가 또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이 책에 쓰인 과거로부터 미래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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