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폭력과 즐거움 사이 스포츠 사회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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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문명화/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에릭 더닝 지음·송해룡 옮김/572쪽·3만4000원/성균관대학교출판부

고대올림픽에서 레슬링(판크라티온) 경기는 격투기나 마찬가지였다. 손가락을 꺾거나 팔을 뽑아버리는 일도 흔했다. 이로 물어뜯거나 목을 졸라 상대를 죽이기까지 했다. 구기 경기라고 다를 바 없었다. 불과 200여 년 전만 해도 영국에서 축구는 야수처럼 격렬했고 폭력적이었다. 한번 경기를 할 때마다 유혈이 낭자했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현대 스포츠는 대부분 19세기 중후반에서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영국에서 다른 나라로 건너간 것들이다. 축구, 경마, 레슬링, 복싱, 테니스, 여우사냥, 조정, 육상경기 등이 그렇다. 왜 영국일까. 그건 스포츠의 문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국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의회제의 발달을 불러왔고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오직 ‘말’과 ‘투표’와 ‘돈’을 통해 싸우겠다는 사회적 합의였다. 사람들은 폭력에 넌더리를 냈고 툭하면 죽고 죽이는 투쟁방식에 진저리를 쳤다. 스포츠도 엄격한 규칙을 통해 폭력적인 행위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18세기∼19세기 초반 영국의 여우사냥은 최초의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사냥꾼은 총이나 칼, 심지어 몽둥이조차 쓸 수 없었다. 여우를 추격하고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냥개뿐이었다. 말을 탄 사냥꾼은 사냥개를 따라가고 지켜보며 긴장감과 흥분을 즐겼다. 사냥개를 조종하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누구의 사냥개가 가장 빠르고 용맹한가. 어느 사냥꾼이 사냥개가 여우를 물어 죽일 때 그 현장에 있었는가. 여우사냥은 흡사 ‘모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냥꾼은 전쟁 지휘자이고 사냥개는 전투원, 여우는 적이었다. 불확실성, 돌발성, 위험성, 피곤함, 끝없는 후방지원 등 모든 게 전쟁과 흡사했다.

그렇다. 현대 스포츠는 폭력이 통제된 놀이다. 가장 훌륭한 사회적 발명품의 하나이다. 경쟁, 협력, 갈등, 조화에 관한 자연적 실험실이기도 하다. 영국인들이 세계 보편적인 여가활동의 패턴을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멋지게 만들어 낸 것이다. 한데 오늘날 축구 훌리건은 왜 유독 영국의 악명이 높을까. 그 해답이 12편의 스포츠사회학 논문을 엮은 이 책 속에 있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스포츠와 문명화#레슬링#판크라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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