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지뢰밭 방사청’ 방치하면 軍이 죽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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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현역 장성 시절 방위사업청(방사청)에서 근무했던 A 씨는 “나는 지뢰밭에 앉아 있다”고 되뇌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비리가 끊이지 않는 방사청 근무가 극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않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예상대로 방산업체와 로비스트들이 집요하게 접근해 온갖 유혹을 했지만 그는 장군의 명예와 품위를 지키며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부하 직원들에게도 분명한 지침을 내렸다. “업무와 관련해 누군가를 만나거나 식사를 할 경우 절대로 혼자 가지 마라. 업자들을 만날 때는 누구든 자신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사람을 대동해라. 선물을 포함해 무엇이든 받지 마라.”

800여 명의 방사청 직원 대부분은 지금도 A 씨처럼 비리와 타협하지 않는 자세로 근무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사청 직원들을 먹잇감으로 여기는 업자와 로비스트가 존재하는 한 어디선가 약한 고리가 끊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최근 드러난 사건들은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전형적인 방산비리와 군납비리의 모습 그대로다. 이번에도 군 출신 업자와 방사청 직원이 결탁해 부실 불량무기와 장비를 군에 공급했다.

고질병이 된 방산비리를 척결할 생각이라면 구조적인 차원의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방사청의 문민화가 시급하다. 방사청은 2006년 출범할 때 현역 군인과 민간인의 비율이 51 대 49였다. 점진적으로 민간인 수를 늘려 30 대 70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목표였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민간 전문가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출범 당시의 비율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방산업체에 근무하거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예비역들이 사관학교 선후배, 군 복무 시절 인연 등 각종 연줄을 무기 삼아 방사청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오염시킬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무기는 군이 잘 알기 때문에 도입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전체 직원의 30%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방사청 내부에서도 나온다.

대위 이상의 장교가 획득전문직 자격을 얻어 방사청에서 끝까지 근무하는 폐쇄형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아무리 군인 정신이 충일하더라도 한곳에 오래 머물며 민간업자와 접촉하다 보면 경계심이 풀릴 수밖에 없다. 군의 작전환경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방사청에 오래 있으면 현장 상황 파악이 어렵다. 일정 기간 방사청 근무를 마치면 군에서 재충전을 한 뒤 복귀하는 순환형 근무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산비리와 군납비리가 적발돼도 무기와 군사장비에 대한 정보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되는 것도 문제다. 감사원은 2011년 국방감사단을 만들어 방사청을 포함한 국방 분야를 상시 감사하고 있다. 통영함을 비롯해 최근 알려진 방산비리는 오래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사건들이다. 하지만 군사기밀을 이유로 감사원도 방사청도 공개하지 않아 국민은 국정감사 전까지 까맣게 몰랐다.

비리에 연루된 방사청 소속 군인들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도 개혁의 대상이다. 민간인은 엄중한 처벌을 받는 반면 군 내부 징계에 회부된 현역 군인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일벌백계가 되지 않고 있다.

통영함 비리는 현직 해군 참모총장의 연루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해군을 초상집으로 몰아넣고 있다. 육군과 공군도 방산비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실 불량무기가 늘고, 필요한 장비는 제때 도착하지 않고, 장교들은 방산비리의 주범으로 몰리면 결국 군이 위험에 빠진다. 정부는 군을 살리겠다는 각오로 ‘지뢰밭 방사청’ 개혁에 나서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방사청#방위사업청#방산비리#통영함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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