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처럼 반짝이는 꼬마손님 눈망울… 문 못 닫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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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스케치]청계천 수족관 거리 어제와 오늘

청계천 수족관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남국상사’의 박남국 사장은 금붕어 행상으로 시작해 여전히 물고기 장사를 하고 있다. 
그는 “예전보다는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예쁜 물고기를 찾아 청계천을 찾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청계천 수족관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 ‘남국상사’의 박남국 사장은 금붕어 행상으로 시작해 여전히 물고기 장사를 하고 있다. 그는 “예전보다는 손님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예쁜 물고기를 찾아 청계천을 찾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내 마음속 영원한 원더랜드(Wonderland).’

2006년 3월 첫 주말 일요일. 서툰 면도질로 인중이 빨갛게 달아오른 스무 살 청년이 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에 나타났다. 그는 무작정 청계7가 방향으로 내달렸다. 400m쯤 달렸을까. 갑자기 청년의 동공이 활짝 열렸다. 검은 눈동자에 형형색색의 보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열대어’였다. 이를 바라보던 순간은 그에게 ‘인생 최초의 오르가슴’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한때 인생 전체를 ‘물 생활’(관상어 사육에 푹 빠진 것)에 바치겠노라고 다짐했던 청년이 이제 펜과 취재수첩을 들고 다시 청계천 거리에 나섰다.

청계천 수족관 거리의 시작은 ‘보따리장수’

현재 우리 관상어 시장에 보급된 열대어 종류는 400여 종에 이른다. 특히 수초어항에서 함께 키우기 좋은 난태생 송사릿과, 
카라신과, 잉엇과 어종의 인기가 좋다. 구피, 네온테트라, 수마트라(위 사진부터)는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열대어 종이다. 
그린피쉬 제공
현재 우리 관상어 시장에 보급된 열대어 종류는 400여 종에 이른다. 특히 수초어항에서 함께 키우기 좋은 난태생 송사릿과, 카라신과, 잉엇과 어종의 인기가 좋다. 구피, 네온테트라, 수마트라(위 사진부터)는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열대어 종이다. 그린피쉬 제공
“올해도 두 곳이 그만뒀어. 자기 삼촌 뒤따라 수족관 한다고 떠들던 그 조카 녀석은 지금 어디로 가부렀는지도 몰러.”

지난달 7일 박남국 ‘남국상사’ 사장(72)은 툴툴대며 가게 뒷길로 걸음을 옮겼다. 박 사장은 청계천 수족관 거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1세대 중 유일한 현역이다. 50년 전 박 사장과 함께 청계천에서 붕어 장사를 하던 이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세상을 떴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박 사장은 18세 때 “못 마친 공부를 하고 싶다”며 무작정 상경했다. 하지만 공부는 둘째 치고 밥 벌어먹기도 힘든 생활이 1년 넘게 이어졌다. 고향 선배 한 명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라”며 금붕어 행상을 권했다. 설마 이 일이 천직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박 사장은 그때부터 매일 오전 5시 옛 동대문극장(종로5가 인근)에서 열리던 번개시장으로 나갔다. 1960년대 초반 서울 제기동, 안암동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성한 금붕어 노지 양식장만 10곳이 넘었다. 여기서 나온 금붕어들과 한 자(30cm) 어항 5, 6개를 짊어지고 서울 용산, 경기 부천, 파주 문산, 동두천 미군부대 앞 기지촌을 누볐다. 양공주(주한미군을 상대로 매춘하는 여성)들이 금붕어를 특히 좋아했다. 박 사장은 “금붕어를 바라보던 그 사람들 눈빛이 참 서글펐다”고 추억했다.

이렇게 돈을 모은 금붕어 행상들의 눈에 띈 곳이 바로 청계천이었다. 당시 복개된 청계천 길을 따라 열린 시장에는 매일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박 사장은 1970년대 초 다른 금붕어 장수 9명과 공동 명의로 ‘서울 종로구 창신동 413-1’ 40평짜리 단층 건물을 매입했다. 그리고 정확히 가게를 10등분해 각자 붕어 장사를 시작했다. ‘원더랜드’의 시작이었다.

청계천 수족관의 ‘화무십년홍(花無十年紅)’

희귀 열대어를 전문으로 기르는 마니아가 국내에서 늘면서 성어 1마리당 50만 원을 호가하는 실버 아로와나(사진) 등 대형어, 고대어를 선호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 그린피쉬 제공
희귀 열대어를 전문으로 기르는 마니아가 국내에서 늘면서 성어 1마리당 50만 원을 호가하는 실버 아로와나(사진) 등 대형어, 고대어를 선호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 그린피쉬 제공
청계천 수족관 거리의 전성시대는 1986년 9월에 찾아왔다.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경기를 시작으로 가정마다 수족관 붐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박 사장은 “아시아경기를 할 정도로 먹고살 만해지니까 취미생활이나 집을 꾸미는 데는 큼지막한 어항만 한 게 없었다”고 했다.

가난했던 상인들은 이때 모두 큰돈을 벌었다. 주로 도매업을 하던 남국상사 박 사장이 독점으로 물고기를 공급하던 거래처만 전국에 400곳을 넘었다. 부인과 맏딸까지 총동원해 가게를 돌봤지만 밀려드는 손님과 주문을 감당 못해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 덕분에 박 사장은 20년 넘게 전전하던 셋집 살림을 정리하고 서울 성동구 응봉동에 번듯한 아파트도 마련했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 청계천에 등장한 형형색색 보석이 바로 열대어였다. 금붕어는 싸구려 신세가 됐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게 크고 알록달록한 꼬리의 소유자 베네수엘라산 난태생어(배 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끼를 낳는 물고기) ‘구피’였다.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아마존 원산의 에인절피시와 네온테트라, 인도네시아산 수마트라가 인기를 얻은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청계천 수족관의 전성기는 10여 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97년 외환위기의 불똥이 청계천 상가에도 튀었다. 먹고살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우선 어항부터 정리하고 나섰다. 도매에 전념하던 청계천 가게들도 살기 위해 몸집을 줄이고 소매업으로 돌아섰다. 햄스터, 이구아나, 토끼 등 다른 동물까지 다양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박 사장은 “어떻게든 먹고살아야 했다. 눈길 갈 만한 건 뭐라도 갖다놓고 팔 수밖에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이곳에서 기다릴게요”

“얘들아, 이것 봐. 오늘 들여온 실버 아로와나(아마존산 대형어)야. 정말 멋있지? 지금은 작지만 잘 기르면 1m 이상은 훌쩍 넘는단다.”

남국상사 건너편 ‘대상라인’의 임계숙 사장(52·여)이 한 수조 앞에서 중고교생 6명에게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수조 속에는 아로와나가 은갈치처럼 날씬한 자태를 뽐내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학생들의 눈길은 좀처럼 아로와나에서 떠날 줄 몰랐다.

임 사장은 열대어광(狂)이었던 남편이 1993년 수족관을 통째로 인수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떠맡았다. 막상 수족관을 인수한 뒤 남편은 본업(전시장 설치)에 신경을 쓰느라 수족관 운영은 온전히 임 사장의 몫이 됐다.

힘들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임 사장은 대뜸 “이 아이들을 보라”며 아로와나 어항 앞의 학생들을 가리켰다. “우리 가게엔 어린 손님들이 끊이지 않아요. 초창기 코 묻은 돈으로 구피 한 마리를 사가던 아이가 이젠 다 자라 고가의 인디언나이프(고대어의 일종)를 구입해 가요. ‘멋진 물고기는 청계천에 가면 볼 수 있다’는 명성만 잘 유지하면 진짜 마니아가 된 손님은 언제나 찾아와요.”

2006년 봄 형형색색으로 빛나던 청계천 수족관 거리의 화려함은 갈수록 사라지고 있었다. 한때 200곳을 넘나들던 가게 수는 이젠 30곳 내외로 줄어들었다. 수족관으로 가득 찼던 청계 7가 공영상가 건물엔 이제 신발가게만 가득하다. 추억 속 원더랜드의 쇠락을 지켜본 기자의 마음이 울적해졌다. 지갑 속 비상금으로 묵혀둔 1만 원을 꺼내 열대어 골든테트라 7마리를 샀다. 2년 만의 충동구매. 산소 빵빵한 물주머니를 건네는 임 사장이 속삭였다.

“그래도 사랑 받는 가게는 다 살아남을 수 있어요. 기자 선생처럼 물 생활을 사랑해주는 사람들만 있으면 말이죠. 항상 여기서 기다릴게요….”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열대어#청계천#수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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