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끝, 에픽하이 “뭐든 해봐! 안되면 다른 꿈을 꾸면 되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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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3인조 남성그룹은 후텁지근한 공기 위를 표류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쓰라(최진·31)는 다른 멤버들과 연락이 안 됐다. 투컷(김정식·33)은 창문도 없는 지하 녹음실에 틀어박혀 음악 작업에만 매달렸다. 타블로(이선웅·34)는 친구들과 술 마시러 다니거나 영화관, 서점을 전전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희우정로 YG엔터테인먼트 사옥 3층. 낙엽이 흩날리는 창가의 소파에 검은 옷을 입은 세 남자가 앉았다. 새벽같이 신해철의 발인식에 다녀온 이들은 좀 지쳐 보였다.

“미쓰라가 잠적했고, 작업실에만 박힌 투컷의 건강도 걱정됐죠. 양 사장님(양현석)이 ‘투컷, 쟤, 집에도 안 들어가고…무슨 일 있냐’고 물을 정도였으니까.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가사랑 멜로디가 나온단 핑계로 저만 싸돌아다니는 게 미안하기도 해서, 투컷하고 매일 미술관에 가기로 했어요.”(타블로)

둘은 지난해 여름내 오전 10시에 만나 인터넷 검색창을 띄우고 ‘오늘은 이 전시?’ 하는 식으로 소일했다고 했다. 어쨌든 둘은 “2년간 스케치한 곡만 100개가 넘는다” “컴퓨터 음악 작업창을 10만 번 이상 열고 닫으면서 음악을 벼렸다”고 했다.

에픽하이가 최근 낸 8집 ‘신발장’은 크게 히트했다. 단순한 모양새를 반복하는 슬픈 멜로디가 읊조리는 랩과 결합되는 ‘헤픈엔딩’ ‘스포일러’, 자부심과 비판이 치열한 각운에 들어찬 ‘본 헤이터’와 ‘부르즈 할리파’는 세 남자가 여전히 높은 데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작사, 작곡, 편곡의 대부분을 타블로와 투컷이 책임지는 가운데 방황의 시간을 보낸 미쓰라는 지난해 멤버들에게 “음악, 이제 관두고 싶다”고까지 털어놨다. “그럼 뭐하게.”(타블로) “모르겠어.”(미쓰라) “알 때까지만 하면 안 될까.”(타블로) 설득 끝에 에픽하이의 삼각형은 깨지지 않았다. “앨범 내고 무대에 셋이 섰는데, 처음으로 때론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뿌듯했죠.”(타블로)

마이크만 잡으면 행복해진다는, 꿈을 이뤘다는 이들에게 요즘 젊은이들이 랩에 빠진 이유를 캐물었다. “힙합은 록만큼이나 감수성을 강하게 자극하는 음악이죠.”(미쓰라) “건축가의 꿈은 많은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실현되지만 래퍼의 꿈은 마이크 한 자루로 이뤄지죠.”(타블로) “그래서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가장 어려운 거예요.”(투컷)

올해 화제가 된 래퍼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에 멘토로 출연한 타블로는 “여고생 출연자가 랩 가사를 까먹고 ‘난 힙합밀당녀’라고 한 건 당황스러웠지만 그 나이다운 거였다”고 했다. 래퍼를 꿈꾸는 10대에게 한마디. “뭐든 해봐! 랩이든, 건축이든. 부딪쳐보고, 아니면 다른 꿈을 꿀 날이 많으니까. 해봐.”

‘신발장’ 발매 기념 공연은 14∼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을 시작으로 다음 달 7일 대구, 19일 인천, 27∼28일 부산으로 이어진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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