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현진]‘감옥’이 되어 버린 리베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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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최근 유명 의사 커뮤니티에는 검찰 소환 통보를 받은 의사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약품 처방 대가로 병·의원 1125곳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동화약품을 검찰에 고발한 후폭풍이다. 검찰이 소환 대상으로 잡은 의사만 1500명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에 의료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리베이트 단속에 대한 공포를 따지자면 제약업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부가 7월 도입한 ‘리베이트 투아웃제’의 첫 처벌 대상이 어디일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제약사가 특정 의약품을 채택한 병원이나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두 차례 적발되면 해당 제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면 제품의 가격이 크게 올라 사실상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1일 서울서부지검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이 수도권의 대형 대학병원을 급습했다. 내부 고발을 바탕으로 4개월간 기획수사를 통해 증거를 다수 확보한 상태라 파괴력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이미 업계에서는 10개가 넘는 제약사의 명단이 나돌고 있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리베이트 근절 의지가 점점 높아지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 들어 쪼그라든 매출액을 보면서 그동안 영업에서 차지해 온 리베이트의 위력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최근 협회와 개별 회사 차원에서 자정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심정은 복잡하다. 한 제약회사 임원은 “구조적으로 리베이트 없이 영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구조적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엇갈린다. 신약(오리지널약) 개발에는 1조∼3조 원의 개발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신약의 특허기간(통상 20년)이 끝나면 내놓을 수 있는 복제약(저네릭)은 수억 원이면 된다. 국내 제약품의 98%가 이런 복제약이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품은 광고나 홍보를 할 수 없어 유일한 마케팅 도구가 리베이트라는 게 제약업계의 항변이다. 복제약이 효능에 별 차이가 없어 의사 입장에서는 어떤 약을 써도 상관없다. 의사의 수입이 예전 같지 않아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먼저 손을 벌린다는 주장도 한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오리지널약 가격의 86%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은 복제약 값 수준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복제약 값을 높게 책정하면 제약사들이 벌어들인 수익으로 신약 개발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높은 마진을 챙겨 다른 복제약을 만들고 다시 리베이트를 뿌려 수익을 챙기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소비자단체들은 리베이트로 높아진 만큼의 약값을 돌려 달라고 소송까지 벌이고 있다.

폐해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약업계 등 바이오산업 전체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제약업계를 들여다보면서 놀랐던 것은 매출액 1조 원이 넘는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 50대 제약사, 글로벌 100대 바이오기업에 한국 제약사는 한 곳도 끼어 있지 않다.

정부와 재계는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겠다고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바이오산업을 거론해왔다. 신약 개발은 그중에서도 핵심이다. 물론 여러 제약사가 보이지 않게 신약 개발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약사는 스스로를 리베이트라는 감옥에 가둬놓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주 열린 간담회에서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약속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라는 이유를 빼놓지 않았다. 이 다짐이 부디 듣기 좋은 수사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박현진 소비자경제부 차장 witness@donga.com
#공정거래위원회#리베이트#의사#바이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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