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임수]정피아 전성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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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기자
정임수 경제부 기자
“나 대통령 상임특보 김○○인데….”

최근 70대 할머니가 대통령과 친분을 들먹이며 수억 원을 사기 친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김치 유통·판매업을 하는 74세 ‘마포 김 사장’은 “투자를 받아 주겠다”, “대기업 협력업체로 등록시켜 주겠다”며 주변인들로부터 로비자금 명목으로 3억 원 이상을 받아 챙겼다. 그는 ‘대통령 상임특보 김○○’이라고 인쇄된 명함을 갖고 다녔고, 사무실에는 대통령이 보낸 것처럼 ‘축 생신, 대통령 박근혜’라고 적힌 화분을 뒀다.

이에 앞서 50대 남성이 전화 한 통화로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의 인사 청탁이라고 속여 대우건설에 취업하고, KT에 취업을 시도한 일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50대 사기꾼, 70대 할머니가 이렇게 쉽게 ‘정권 실세’로 둔갑할 수 있다니, 참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세상이다.

이런 고전적 ‘권력형’ 사기 수법이 아직도 통하는 것은 법과 원칙보다 권력이 앞서고, 정권 실세와 연줄이 닿으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의식구조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 낙하산 논란으로 시끄러운 곳이 금융권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관피아(관료+마피아) 대신 정피아(정치권+마피아)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의 산하기관 재취업이 봉쇄되자 정치권 인사들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

정피아 낙하산이 주로 가는 곳은 막강 권한에 두둑한 보수까지 보장돼 ‘신(神)도 탐낸다’는 금융권 감사 자리다. 올 들어 금융공기업(자산관리공사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한국거래소 수출입은행)부터 정부나 공공기관이 지분을 가진 민간 금융회사(대우증권 서울보증보험 경남은행 우리은행)까지 대선캠프, 새누리당 출신들이 감사 자리를 싹쓸이했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일한 이수룡 씨가 지난달 31일 기업은행 감사로 첫 출근을 했다가 노조의 저지로 30분 만에 돌아가기도 했다.

정치권 출신이라도 금융 관련 업무 경험이 있고 실력을 갖췄다면 얼마든지 금융회사 감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정피아 감사는 유관 경력이나 전문성이 거의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감사는 회사의 경영 상황을 감독하고 내부 비리를 감시하는 자리다. 은행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회계장부를 어떻게 보는지 모르는 이들이 제대로 된 감사 업무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런 점에서 관피아보다 정피아의 폐해가 더 크다는 지적이 많다. 전문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호시탐탐 정계 복귀를 노리며 외부 줄 대기에 연연하느라 업무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죽하면 금융회사 노조가 “차라리 업무를 아는 관피아를 보내라”고 말할까. 관피아에서 정피아로 변질된 낙하산이 계속되는 한 박근혜 정부가 내건 국가대혁신은 요원하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
#정피아#마포 김 사장#사기#권력형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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