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하나에 의료분쟁 희비 갈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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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소송사례로 본 대응책

‘의료소송 승소는 하늘의 별 따기?’

가수 신해철 씨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환자 또는 가족이 병원과의 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소송 시 피해자 측의 ‘완전 승소’ 비율은 지난해 기준 1.74%(일부 승소는 28.5%)에 그칠 만큼 환자가 의료 전문가인 병원을 상대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본보는 최근 의료소송에서 승소하거나 패소한 사례를 비교해 일반인이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봤다.

○ 의무기록 확보, 전문변호사 선임이 승소 비결


간호사 서양순 씨(39)는 2008년 11월 남편 양평모 씨(당시 38세)를 먼저 떠나보냈다. 가쁜 숨을 내쉬던 양 씨가 사망하기 직전 폐 X선 사진은 멀쩡한 곳 하나 없이 뿌옇게 변색된 상태였다.

전직 육상선수였던 양 씨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건 사망 3개월 전부터다. 기침이 한 번 시작되면 멈출 줄 몰랐다 서울 중랑구의 한 개인 의원에서 양 씨에게 내린 진단은 결핵 초기. 왼쪽 폐 X선 검사에서 50원 짜리 동전만 한 작은 결핵 흔이 발견됐다.

결핵약을 한 달 넘게 먹었지만 병세는 더 나빠졌다. 결국 “다제내성 결핵(일반 치료제로는 치료가 안 되는 중증 결핵)과 폐렴이 겹쳐 우린 못 고친다”는 개인 의원 의사의 진단으로 양 씨는 아내의 직장인 서울 노원구 A종합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양 씨를 진단한 A병원 내과과장의 대처는 ‘응급 상황’과는 사뭇 달랐다. ‘단순 결핵’이라는 진단명과 일반 약 처방만 반복했다. 결국 고향(충북 영동)에서 요양을 하다가 같은 병원 중환자실로 실려 온 양 씨는 손쓸 새도 없이 9일 만에 숨졌다.

5일 서울 중랑구 자택에서 만난 아내 서 씨는 “상식선에서 남편의 죽음은 의료사고라는 걸 확신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장례 1년 후 서 씨는 ‘독하게’ 소송 준비에 나섰다. 진료기록과 처방, 투약, 심전도 등 각종 의료기록 40여 종을 확보했다. 친척 변호사를 선임한 1심에서 패소하자 과감히 의료소송 전문가로 법률 대리인을 교체하기도 했다.

결국 올 3월 서울고법의 항소심에서 “원고(양 씨 측)에게 96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 씨는 6년 묵은 한도 풀고 소송비용 2000여만 원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그는 “방송 출연도 할 만큼 온갖 걸 다 했다”며 “사고를 당한 즉시 진료기록을 확보하고 소송을 잘 준비하면 대형 병원에도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자료 없는 의료소송은 ‘백전백패’


손상현 씨(53)는 아들만 보면 마음이 먹먹하다. 손 씨 아들 영준 씨(25)는 손짓 하나 못하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 숨만 쉬고 있다. 2007년 2월 교통사고를 당한 후 7년째다. 차에 치인 부분은 다리였지만 수술대에서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 아들은 그대로 식물인간이 됐다.

고등학생이던 아들은 교통사고로 허벅지 아래가 찢어지고 발목과 무릎 사이 뼈가 부러졌다. 서울 영등포구의 B대학병원에 입원해 다음 날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시작 2시간 만에 심정지가 왔다. 당초 부분마취로 수술을 진행하다 전신마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들이 죽을 고비를 넘기는 동안 아버지는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 당시 정형외과와 마취과 기록지를 받았다. 그런데 양쪽 기록지에 적힌 수술 시간이 달랐다. 정형외과 기록지엔 ‘오후 4시 50분경 심정지가 와 수술 중단’으로 돼 있었지만 마취과 기록지엔 ‘6시 45분경 전신마취로 전환하고 심정지가 왔으며 8시 50분 수술 종료’라고 돼 있었다.

어떤 기록이 맞는지 알려면 아들의 심전도 기록과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심전도 기록이 없다”면서 주지 않았고 경찰과 검찰은 압수수색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고소사건에서 병원 측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손 씨는 당시 수술실에 마취과 전문의가 아닌 전공의(레지던트)가 들어와 있었다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현재 손 씨는 마취과 레지던트로부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당해 항소심 등 3건의 송사를 치르고 있다. 손 씨는 “환자 가족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자료도 없이 벌인 싸움은 질 게 뻔한 싸움”이라고 하소연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상대적 약자인 환자가 의료사고 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빠른 법적 절차와 의무기록 확보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신해철 씨처럼 언론 등 사회적인 이목을 주목시키는 것 역시 승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철호 irontiger@donga.com·강은지·최혜령 기자
#CCTV#수술실#의료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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