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을 수출한다고?…“대한민국 ‘학피아’ 실력으로 깨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10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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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본관 앞에 있는 육모정의 시공과정. 육모정은 특수대학원 한옥학과 학생들이 한 달여 동안 만든 것이다. 전북대 건축공학과 제공
전북대 본관 앞에 있는 육모정의 시공과정. 육모정은 특수대학원 한옥학과 학생들이 한 달여 동안 만든 것이다. 전북대 건축공학과 제공

'한옥은 전북대가 1등'
한류의 대표상품으로 한옥을 키워 수출까지 꿈꾸는 사람들

전북대 캠퍼스 곳곳에는 아담한 정자가 있다. 정자들은 현대식 건물투성이인 캠퍼스에 운치와 여유를 더한다. 박물관 앞에 있는 사모정에는 삼삼오오 학생들이 모여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독서도 한다. 사모정은 2012년에 만들어졌지만 제법 손때가 묻어 꽤 오래된 정자처럼 보인다. 기와지붕에는 낙엽이 쌓여있고 정자 주위로는 단풍이 짙어 만추의 풍치로도 그만이다. 캠퍼스 안에는 두개의 정자가 있고 한 개는 만드는 중이다. 이 정자들은 건축공학과 특수대학원의 '한옥학과' 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정자에는 건축공학과의 미래비전이 들어있다. 미래비전이란 건축공학과가 한국의 '한옥 중심'이 되는 걸 의미한다. 건축공학과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시대흐름을 읽고 제도적 뒷받침을 이용한다. 시대흐름은 정부의 '한류 3.0' 육성 정책이다. '한류 3.0'은 '한국의 모든 문화콘텐츠'를 지칭한다. 정부는 '한류 3.0'을 통해 한 차원 높은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제도적 뒷받침은 건축공학과가 포함된 전북대의 '신한류 창의인재양성사업단'이 6월에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지원 대상으로 선정됨으로써 날개를 달았다. 사업단은 인문학과 공학까지 융합해 비즈니스 마인드에 바탕을 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건축공학과가 특성화 대상이 됨으로써 학생들은 B° 이상의 성적을 받으면 학기당 200만원, A° 이상은 등록금 전액면제 등 다양한 장학금 혜택을 받는다. 국내외의 문화탐방을 갈 때도 20만~300만 원씩을 지원한다.

전북대 건축공학과는 올해부터 한옥을 정규교과과정에 넣어 한옥교육을 본격화했다. 4학년 전공필수인 3학점짜리 '한옥건축'을 통해 한옥 이론과 설계를 가르친다. '한옥개론'을 교양과목으로 개설해 건축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도 한옥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두 과목은 건축공학과의 한옥관련 특성화를 뒷받침하고 이미 개설돼 있는 특수대학원의 '한옥학과'와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건축공학과는 앞으로 '한옥설계'를 3학년 전공필수로 개설하는 등 한옥특성화에 맞는 다양한 커리큘럼을 만들 예정이다.

한옥특성화는 공학과 설계를 융합하기 위해 2010학년도부터 국립대 최초로 건축공학과와 건축학과를 통합해 건축공학과를 만든 노력의 산물이다. 건축 현장은 공학과 설계, 양쪽 모두에 대한 기본 지식을 요구하는데 학교 교육은 이에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한옥특성화 과정은 한옥 이론과 설계, 건축을 모두 중요하게 다룬다.

건축공학과 목조건축사업단에서 교육 보조를 하고 있는 4학년 오수민 씨(25)는 "한옥공부를 통해 한옥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한옥의 문제점을 개선한다면 한옥현대화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공무원이 돼 한옥보급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창캠퍼스 한옥실습실에서 강사인 전통목수가  한옥 설계 교육생들에게 먹놓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전북대 건축공학과 제공
고창캠퍼스 한옥실습실에서 강사인 전통목수가 한옥 설계 교육생들에게 먹놓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전북대 건축공학과 제공

전북대 건축공학과 남해경 교수.
전북대 건축공학과 남해경 교수.
건축공학과는 한옥설계인력 양성은 전주캠퍼스, 한옥기능인력 양성은 고창캠퍼스로 역할을 분담했다. 특히 한국유일의 한옥실습장을 갖춘 고창캠퍼스는 한옥특성화를 가능케 해주는 중요한 인프라다. 1만 ㎥에 달하는 실내외 실습장에는 강의실, 세미나실뿐 아니라 한옥 치목이 가능한 각종 도구도 갖춰져 있어 학생들은 마음껏 공부와 실습을 할 수 있다. 한옥특성화를 이끌고 있는 남해경 교수는 "고창캠퍼스를 한옥의 바우하우스로 만들어 한옥 교육기관, R&D센터, 산학협력 및 보급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고창캠퍼스에 일반인 대상의 '한옥인테리어'과정을 포함한 '한스타일 프로그램'을 개설해 한옥의 저변확대에 나설 예정이라고.

남 교수는 한옥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이다. "우리지역의 재료를 사용하고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건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건축이란 전통건축이나 민속건축에서 핵심요소를 뽑아 현대건축화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한옥이 제격이다. 한옥은 인간에게 좋은 건축물이기에 어떤 건축물보다 지속가능하다."

남 교수가 꼽은 한옥의 장점들은 자연 친화적, 인간 친화적, 문화적 건축물이라는 것. 거주할 사람의 모든 점을 고려해 자연적인 재료로 지은 한옥은 사람과 집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좋은 집이 된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한옥수출'에 한옥특성화가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유럽에 수출한 한옥이 500채에 이르고, 2012년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 성 닝안(寧安) 시 밍싱(明星) 촌에는 1500여 채의 한옥으로 만든 대규모 한옥마을이 들어섰다. 한옥도 한류의 한 부분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 그러나 '한옥수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남 교수는 "카자흐스탄에서 온돌이 들어간 아파트가 호평을 받았다. 한옥은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옥전문가들이 한옥한류 확산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주의 유명한 관광지 한옥마을이 건축공학과가 한옥특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다. 남 교수는 정체성이 모호한 한옥마을이 한옥의 대표로 여겨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2009년부터 건축사들을 대상으로 한옥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한옥의 건설 및 유지 보수를 책임지고 있는 건축사들이 한옥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정체성이 모호한 한옥들이 생겨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옥특성화를 뚝심 있게 추진한 바탕에는 "서울과 지방대학 교수 사이에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학피아'를 실력으로 깨야겠다"는 남 교수의 의지도 작용했다. 지방대 교수들이 서울과 수도권 대학의 교수들에 비해 실력이 전혀 모자라지 않다는 걸 한옥특성화를 통해 증명하고 싶었다는 것.

기자는 남 교수의 '학자적 패기'에 공감한다. 학생들 역시 "한옥1등은 전북대"라고 말한다. 대학간 경쟁을 넘어 대학 내에서도 경쟁하는 시대다. 열정과 패기가 있어야 경쟁의 장에 발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다. 지방대학의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열정과 패기로 뭉쳐 그 존재를 증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주=이종승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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