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반기문의 축하 동영상과 안철수의 식사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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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39.7% 지지율은 설문의 집중효과로 인한 허수
고건 김황식 경우 비추어 자생력과 권력의지 중요
반 총장도 관심 크겠지만 성공한 유엔사무총장이 최선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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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의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기사에 피드백을 보내고 언론사별로 돌아가며 야당 출입기자들과 ‘식사(食事) 정치’를 하고 있다. 안철수 붐이 피크였던 시기에는 기자들이 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있어도 시원한 멘트 하나 듣지 못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든다. 한때 30%대를 오르내렸던 안 의원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추락해 여야 대권주자 가운데 5∼7위로 밀려났다. 그렇지만 ‘안철수의 거품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그는 아직 52세의 초선 의원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뜨고 있지만 안 의원의 빈자리를 메울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 것은 아니다.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10월 17, 18일)에서 반 총장의 지지도는 39.7%로 2위를 한 박원순 서울시장(13.5%)의 3배에 달했다. 그러나 한길리서치의 설문 중 6번째 문항은 ‘반 총장이 나올 경우 차기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합니까’라는 것이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마지막 질문 문항에 반 총장의 이름만 거론돼 집중 효과로 인한 허수(虛數)가 끼었다는 해석을 했다. 반 총장이 2위로 나온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1위 박원순, 3위 문재인, 4위 김무성으로 1∼4위에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이택수 대표가 친박(친박근혜)들의 모임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 발표한 ‘2017 차기 대선 지지도 판세’는 시기적으로 미묘한 해석을 낳았다.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비서관이 기자실을 찾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중국 상하이 개헌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 지난달 21일. 그러고 나서 8일 만인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친박들이 2017년 대선 세미나를 열었다. 주제발표를 한 이택수 대표는 “세미나 주제는 내가 알아서 정했다”고 말했지만 의뢰인의 의사와 관련이 없는 발표를 했다고 믿기 어렵다. 우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라는 부제(副題)가 예사롭지 않다.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차기 대선보다 더 절박한 것이 2016년의 20대 총선이다. 김 대표가 조직강화특위를 구성해 당원협의회장 점검 작업에 들어갔다. 이런 판에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 편차를 2 대 1 이하로 줄이라는 결정을 내려 당권을 빼앗긴 친박들은 더욱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대통령을 만든 친박이 차기 대선 판세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 것은 얼핏 보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임기말 증후군)을 재촉하는 자해(自害)행위 같지만 김 대표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

과거 고건 전 총리의 예에 비추어 봐도 높은 지지도만으로는 대권 고지에 도달하기 어렵고 권력 의지가 중요한 요소다.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나섰던 김황식 전 총리의 실패에서 보듯 자생력이 없는 후보가 친박 조직에 업혀서 대사를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반 총장의 지지도는 높은 편이지만 자생력과 권력 의지는 미지수다. 그의 나이(70)도 실패를 통한 학습을 허용할 여유가 없다.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을 묻는 리얼미터 여론조사(10월 27일)에서 불출마 예상이 61.4%였다는 것도 이런 회의적 기류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에 있는 반 총장의 측근들은 “한국에서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거론하는 것은 유엔 사무총장의 공식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말한다. 반 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모임도 자발적으로 결성돼 있지만 반 총장은 이런 모임이 도움 될 게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반 총장은 한국에서 찾아오는 국회의원과 고향 유지들을 만나주고 축하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반 총장의 한국 측 인사 면담이 잦아 유엔 직원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욕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국에서 여론조사가 올라가는데 반 총장인들 인간으로서 초연할 수 있겠는가.

국내에서 반 총장에게 관심이 높은 정파는 뚜렷한 대통령 후보감이 없는 새누리당의 친박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노(비노무현)다. 그쪽 사정이 아무리 초조하더라도 반 총장을 국내 정치에 끌어들여 흙탕물을 끼얹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선을 3년 남겨둔 지금 여론조사는 거품 같은 것이다. 반 총장도 국내 문제에 초연한 자세로 임해 성공한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일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반기문#안철수#식사 정치#대통령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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