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큰 메이드인 코리아, 이젠 영혼 심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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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브랜드가치 급상승]

‘메이드인 코리아’ vs ‘메이드인 저팬’.

과거 한국산과 일본산 제품은 국내 소비자에게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의 제품 뒷면에 붙은 ‘메이드인 저팬’이 최고의 품질을 의미했다면 ‘메이드인 코리아’는 국산품 애용을 호소하는 문구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지난 15년여에 걸쳐 한국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크게 바뀌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미국의 정보기술(IT) 업체인 애플이나 독일의 자동차업체에 비해 딱히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기업도 이제는 가격 대비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제품에 영혼을 불어넣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글로벌 경제위기로 급성장한 한국 기업


한국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최근 크게 오른 것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전후로 일본 기업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상대적으로 급상승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의 경쟁 기업인 소니는 2000년대 초반 인터브랜드의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20위권에 머물다 올해 52위까지 떨어졌다. 일본의 대표적 혁신기업이던 닌텐도 역시 한때 29위에서 올해 100위로 간신히 턱걸이를 했다.

유병규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은 “미국과 일본, 유럽의 기업들이 경제위기로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한국 기업들은 괜찮은 품질의 중저가 제품을 판매해 시장점유율을 급격히 올리면서 브랜드 가치도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특정 기업 몇 곳에 의존하는 경향도 뚜렷했다. 100대 브랜드에 포함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한국 기업 3곳의 브랜드가치 평균은 약 204억 달러로 한국보다 100대 브랜드 수가 많은 미국(약 193억 달러) 독일(약 141억 달러) 프랑스(약 96억 달러) 일본(약 146억 달러)보다 컸다.

우승우 인터브랜드 수석부장은 “한국은 특정 대기업이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면 유럽 등은 브랜드 파워가 있는 강소기업이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톱10 브랜드’의 비밀

이번 조사에서 14년간 톱10에 머물렀던 브랜드는 코카콜라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제너럴일렉트릭(GE), 맥도널드 등 5곳이었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MS가 기존의 상품군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지켜왔다면 GE와 IBM은 끊임없이 사업 대상을 바꾸면서도 최상위권의 브랜드 가치를 지켜냈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IBM은 ‘사무환경의 질을 높이는 회사’라는 목표를 유지하면서 사업 영역을 끊임없이 변화시켰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를 지키면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인에게 친숙했던 브랜드 중 100대 브랜드에서 탈락한 기업도 적지 않다. 특히 IT기업인 컴팩 델 모토로라 야후 등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경쟁 기업의 등장으로 급격히 몰락했다.

특히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톱10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나 2011년부터 추락해 2014년 현재 98위까지 하락했다. 우 수석부장은 “LG전자가 100대 브랜드에서 빠지고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HTC가 2011년에 100대 브랜드에 들어왔다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정상에 오른 브랜드도 있다. 도요타는 2004년에 처음으로 톱10에 등장한 후 2010년 리콜사태를 맞아 10위권에서 밀려났지만 2012년에 복귀했다. 버버리 역시 2008년 이후 랭킹에서 사라졌다가 고급 브랜드 중 처음으로 디지털 마케팅에 적극 나서면서 빠르게 가치를 회복하고 있다.

○ “어렵다고 마케팅 비용부터 줄여선 안 돼”

브랜드 전문가들은 올해 중국 IT업체인 화웨이가 처음으로 100대 브랜드에 진입한 것을 계기로 중국 브랜드의 비약적인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스마트폰 업체 6곳의 올 상반기(1∼6월) 세계 시장 점유율은 25.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포인트 늘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올 상반기 점유율은 32.8%다.

4일 중국 기업브랜드연구센터가 발표한 ‘2014년 중국 브랜드 파워지수(C-BPI)’에서 삼성전자는 모바일 부문에서 애플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삼성전자가 1위를 차지했지만 애플에 밀린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애플과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중국 제품 사이에 있는 한국 기업의 위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브랜드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도 이제 애플이나 독일의 자동차업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고급 브랜드 제품과 같은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령 애플은 ‘싱크 디퍼런트(다르게 생각하라)’ 혹은 ‘아이폰스러움’이란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삼성전자에는 이런 정체성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2, 3분기 실적 부진에 따른 우려로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판매관리비용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인터브랜드 미국 본사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인 그레이엄 헤일스 부회장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마케팅에 불필요한 비용이 들어갔는지 점검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지만 일단 비용부터 줄이겠다는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이름만으로도 전통과 특별함을 떠올리고 브랜드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넘쳐나게 하려면 한국 기업은 여전히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정세진 mint4a@donga.com·김성규 기자
#한국기업#브랜드가치#메이드인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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