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추억] 김재박 “3번의 무승부 끝에 KS 제패…내 인생 최고의 순간”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1월 5일 06시 40분


현대왕조를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고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현대왕조를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우승을 차지하고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스포츠동아DB
6. 김재박이 떠올린 2004년 KS

현대, 9차전에 걸친 혈전 끝 삼성 제압
“김응룡 감독님에게 진 빚 갚고 싶었다”

한국시리즈(KS)는 수많은 명승부를 쏟아냈지만 그 스케일만 놓고 보면 2004년 KS를 따라올 수가 없다. 당시 현대와 삼성이 맞붙었던 KS는 예정된 7차전을 넘어 세계신기록에 해당할 9차전까지 흘러갔다. 그 당시 이닝제한(12회) 규정과 시간제한(4시간) 규정에 걸려 무려 3차례나 무승부가 빚어진 탓이었다.

결국 KS는 11월1일 9차전(잠실)에 가서야 우승자가 가려졌다. 9차전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현대의 8-7 승리로 끝났다. 현대는 4승3무2패로 창단 첫 KS 2연패를 달성했다. 그 당시의 현대 감독이었던 한국야구위원회(KBO) 김재박 경기감독관은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우승”이라고 돌아봤다. 이 우승으로 김 감독은 1998년, 2001년, 2003년에 이어 4번째 KS 우승을 해냈다. 돌아보면 김 감독 야구인생에서 마지막 우승이기도 했다.

● 범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의 대리전

‘왕자의 난’ 이후 갈라서긴 했어도 현대야구단을 향한 범 현대가의 애정은 깊었다. ‘야구만큼은 삼성에 지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삼성도 KS 역대 최다우승에 빛나는 김응룡 감독에 선동열 수석코치까지 영입, 최강 벤치로 맞섰다. 김 감독은 “1996년 첫 KS에서 김응룡 감독의 해태에 졌다. 최고의 명장인 김 감독님에게 꼭 한번 빚을 갚고 싶었다”라고 당시 심경을 떠올렸다. 차기 삼성 감독이 확실했던 선동열 수석코치와 라이벌 구도도 관심사였다.

이런 요인들이 얽혀 2004년 KS는 시작하기 전부터 신경전이 날카로웠다. 2004년 KS는 무승부 경기가 더 관심을 모았던 시리즈이기도 했다. 1차전을 현대가 6-2로 승리한 뒤 2차전에서 8-8 무승부가 나왔다. 8-8에서 4시간 시간제한에 걸려 9이닝 만에 무승부 처리가 됐다. 3차전을 삼성이 8-3으로 승리한 뒤 4차전 또 무승부가 나왔다.

4차전은 삼성 선발 배영수가 10이닝 11탈삼진 1볼넷 노히트노런을 하고도 0-0으로 12회까지 가버리는 바람에 대기록을 인정받지 못하는 희대의 사건이 터진 경기였다. 5차전을 현대가 4-1로 잡자 6차전 삼성이 1-0 승리로 응수했다. 2승2무2패, 사상 첫 8차전이 확정됐다. 그래도 모자라 7차전 두 팀은 또 6-6으로 비겼다. 김 감독은 “7차전까지 계산을 해놓고 KS에 들어갔는데 8,9차전이 열려 너무 힘들었다”고 떠올렸다. 선수들조차 “우승이 문제가 아니라 내 몸이 부서지겠다”고 하소연을 털어놓은 혈투의 승자는 8차전(3-2)과 9차전(8-7)을 연속으로 잡은 현대였다. 이 KS 이후 시간제한 제도는 철폐됐고, 연장전은 15이닝까지로 확대됐다.

● 그로부터 10년 뒤, 다시 붙은 후예들

정확히 10년이 흐른 2014년, 삼성의 KS 4연패를 저지할 팀으로 나선 상대는 ‘현대의 후예’인 넥센이다. 당시 멤버였던 배영수, 임창용, 박한이, 진갑용, 강명구, 조동찬, 권혁 등은 삼성왕조를 열며 10년 후에도 건재하다. 이에 비해 넥센은 송신영, 이택근을 제외하면 세대교체가 됐다.

그래도 김 감독의 마음은 은근히 넥센에 가 있다. “삼성이 예년에 비해선 힘이 조금 떨어진 것 같아 넥센이 해볼만하다”고 말했다. 2014년 11월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2004년 가을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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