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출옥 후 심신 추스르는 수양법으로 처음 붓 들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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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수묵화 개인전
蘭-모란 그리다 2014년 山水 시작
“백두대간이 우주 아우라의 근원”

“산수화는 풍경 아닌 우주를 담는 그림이오.” 산수화를 처음 공개하는
김지하 시인은 “텃세 모르는 토박이들이 살던 한반도 중부 산하에 우리 민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sohn@donga.com
“산수화는 풍경 아닌 우주를 담는 그림이오.” 산수화를 처음 공개하는 김지하 시인은 “텃세 모르는 토박이들이 살던 한반도 중부 산하에 우리 민족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sohn@donga.com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선화랑에서 최근 열린 김지하 시인(73)의 수묵화 개인전 ‘빈 산’(8∼18일) 기자간담회는 길고 좁은 살얼음판 길을 연상시켰다. 붓 잡게 된 동기를 묻자 “요즘 기자들이 기자야? 나라꼴이 왜 이렇게 됐는지 고민하고 대안 내놓는 글을 써야지” 하는 호통 답변이 이어졌다. 참석자 일부가 슬며시 자리를 떴다.

맥락이 끊길 듯 묘하게 이음매를 찾아 붙여가는 변설 사이사이 “그림 좀 잘 알려 줘” 의뭉스러운 너털웃음이 끼어들었다. 귓전으로 흘려 넘기며 벽면에 걸린 100여 점의 그림에 신경을 집중했다.

“무서운 내 마누라쟁이가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거든. 처음 모란꽃을 그려 보여줬더니 대뜸 ‘졸작이네’ 하더라고. 그 말 듣고 나니까 손에서 붓이 쪼르르 도망가 버렸어. 다섯 달쯤 뒤에 갑자기 마음이 동해서 붓 가는 대로 다시 그려 보여줬더니 이번에는 좋다 하는 거야. 그러고 나니 붓이 손에 착 붙더라고.”

‘난초 6’ 선화랑 제공
‘난초 6’ 선화랑 제공
꼬마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대학에서도 미학을 전공했지만 그가 작정하고 붓을 잡은 건 6년 옥고를 치르고 1980년 석방된 뒤부터다.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와 오적(五賊) 필화 사건으로 인한 옥살이였다. 심신을 추스르는 수양법으로 난을 치기 시작한 것. 모란은 3년 전, 산수는 올해부터 화폭에 담았다.

“정선 아오라지를 아시나? 동과 북의 물이 흘러와 만나는 곳. 신라의 설총과 조선의 율곡이 공부하던 곳이오. 그 두 걸출한 인물을 낳은 어머니의 이미지가 이 공간에 서려 있지.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고 아끼는 군자의 성품을 가진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담은 것이 이 아오라지 산수 그림인 거요.”

종잡기 어렵도록 일부러 마구 던지는 듯한 그의 말에 동의하고 말고는 듣는 이의 자유다. 하지만 “백두대간이 우주 아우라의 근원”이라는 그의 강변을 딱 잘라 부인하기는 어렵다. 긴 세월 강단이 오롯이 배인 그의 붓 자국 앞에서는. 02-734-0458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지하#수묵화#빈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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