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는)보다 이(가)라고 했을때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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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 시집 ‘은는이가’ 펴내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은는이가’에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인 정끝별 시인(50·사진)이 다섯 번째 시집 ‘은는이가’(문학동네)를 펴냈다. 그는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됐다. 지금까지 낸 시집 제목들은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그는 명사의 세계에서 부사로 그리고 조사로 시적 탐구를 진행했다. 그는 “명사로서의 세계 혹은 세상에 대한 주체들의 태도, 시선, 자세가 ‘은는이가’에 담겨 있다”며 “사랑이란 이름으로 삶과 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관계를 탐구하면서 생산된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은 ‘나는’처럼 ‘이가’보다 ‘은는’을 더 많이 써왔다. 그는 “이번 시집이 주격조사인 ‘이가’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가’라고 했을 땐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라고 말했다.

58편의 시는 ‘궁극의 타이밍’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당신은?’ ‘푹’ ‘기타 등등’이란 부제의 4부 아래 모였다. 물음이 담긴 시들이 많다.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마흔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묵묵부답’에서)

‘끝별’이란 이름은 시인의 필명이 아니라 호적에도 올라간 본명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50년 전 순우리말 이름 ‘끝별’로 지으려고 한자 이름을 요구하는 동사무소 직원과 오래도록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릴 땐 튀는 이름이 조금 못마땅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아버지가 주신 ‘끝별’의 의미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시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죠. 누구에게나 다르게 지각되는 ‘끝’이라는 시공간적 지점과, 이미 수억 광년 전에 폭발해 사라진 존재인데 저리 높고 빛남으로써 누군가에게는 어둠 속 지도가 되기도 하는 ‘별’ 같은 존재가 바로 시가 아닐까요.”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끝별#은는이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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