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패션을 사냥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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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살때 대충대충 할거라는건 편견”
최신 트렌드-소재까지 꼼꼼히 공부… 온라인 커뮤니티서 정보공유 활발
독특한 취향 반영한 새 브랜드 찾기… 백화점이 매장 영입 공들이기도

롯데백화점은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에 적극적인 남성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새로운 편집매장을 대거 입점시켰다. ‘맨잇슈’(왼쪽)는 ‘조지 클레버리’ ‘로크’ ‘산토니’ 등 해외 고급 수제화를 한곳에 모아놓은 매장이다. 롯데백화점 제공
직장인 박영준 씨(34)는 한 달 전부터 무스탕 재킷에 대해 ‘열공’(열심히 공부)해 왔다. 브랜드별로 사용하는 양털이 어떻게 다른지, 소재의 두께는 어떤지 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3개 브랜드로 후보군을 좁힌 그는 이번 주말에 남성전문관이 있는 백화점에 갈 계획이다. 박 씨는 ”노트북보다 비싼데 공부는 필수 아니냐”고 말했다.

아내나 어머니가 사다 주는 옷을 거부하는 20∼40대 남성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최신 트렌드와 옷의 소재, 브랜드의 역사 등을 공부하고 고민하는 적극적 소비층으로 진화 중이다. 이런 소비자들 때문에 주요 백화점들은 예전에는 생소하게 여겨졌던 독특한 브랜드를 들여오기 위해 애쓰고 있다.

○ 사냥하듯 쇼핑하는 남성들

회사원 조모 씨(30)는 체형이 다소 통통한 편이다. 그는 “사이즈를 어떻게 늘리거나 줄여 입어야 할지 등 수선 방법을 미리 체크한 뒤 쇼핑에 나선다”며 “여자들은 ‘아이쇼핑’을 즐기지만 남자들은 미리 공부하고 매장에서 ‘×× 모델 ○ 사이즈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남성의 소비 행태는 미리 전략을 짠 후 목표물을 잡는 사냥 행위와 비슷하다. 현장을 둘러본 후 고심과 의논을 거듭해 물건을 사는 여성과 반대되는 패턴이다. 최근 사냥하듯 적극적으로 쇼핑하는 남성이 늘면서 온라인에서는 남성 패션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회원 56만 명을 보유한 ‘디젤 매니아’다. 19∼45세만 가입할 수 있는 이 카페의 운영자는 “2005년 프리미엄 진 ‘디젤’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카페를 시작했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성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며 “이제는 매일매일 자신의 옷 사진을 올리고, 새로운 브랜드 정보를 나누며, 가장 좋은 구입처까지 함께 찾아내는 거대한 커뮤니티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브랜드는 이슈가 된 지 불과 1년 이내에 백화점에 입점하는 경우도 있다.

○ 똑똑한 남성 소비자, 유통지형 바꾼다

이준혁 롯데백화점 남성패션 바이어는 올 초 인사 발령이 되자마자 새 미션을 받았다. 2010년부터 바이어 4명의 요청을 줄줄이 ‘거절’ 했다는 남성복 편집매장 ‘샌프란시스코 마켓’을 입점시키라는 것이었다. 이 매장은 ‘이탈리아인의 시각에서 본 아메리칸 캐주얼’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지니고 있다.

이 바이어는 “소비자들이 점점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에 요즘엔 바이어들도 ‘갑의 자세’에서 벗어나 입소문 난 매장을 찾아 ‘삼고초려’ 한다”고 했다. 그의 설득으로 결국 샌프란시스코 마켓은 제2롯데월드 저층부의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지난달 문을 열었다.

한태민 샌프란시스코 마켓 대표는 “2005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첫 매장을 냈을 때는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웠지만, 유행만을 따르는 ‘패션’보다 좋은 소재, 독특한 취향을 반영한 ‘옷’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현재 남성 의류 편집매장은 백화점은 물론이고 길거리와 일반 쇼핑몰에서도 점점 늘고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전문 브랜드’도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이탈리아 남성 재킷 전문 브랜드 ‘볼리올리’를, 현대백화점은 가죽 전문 브랜드 ‘벨스타프’를 입점시켰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남성 편집매장 ‘매니즈’를 담당하는 김병준 매니저는 “요즘엔 소비자들이 오히려 ‘이런 브랜드를 가져다 달라’고 제안해서 들여온 브랜드도 있다”며 “앞으로는 적극적인 남성 소비층과 꾸준히 소통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남성복#남성 패션#남성전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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