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들을 순 없지만, 던질 순 있어요… 소리없는 함성을 꿈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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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야구 투수 박병우

국내 하나뿐이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청각장애 투수 박병우도 당장 운동할 곳을 잃게 됐다. 하지만 이 시련이 그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22일 경기 고양시 고양 원더스 훈련장에서 만난 박병우가 밝게 웃고 있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국내 하나뿐이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청각장애 투수 박병우도 당장 운동할 곳을 잃게 됐다. 하지만 이 시련이 그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까지 앗아가지는 못했다. 22일 경기 고양시 고양 원더스 훈련장에서 만난 박병우가 밝게 웃고 있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감독님이 갑자기 양복을 입고 나타났다. 모두 라커룸으로 모이라고 했다. 무슨 중요한 미팅이기에 감독님이 양복까지 입고 나타나셨을까. 궁금했다. 한참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단장님과 코치님, 선수 몇 명이 울기 시작했다. 왜일까. 나중에 한 형이 얘기했다. “우리 팀 해체된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있을까.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데…. 처음엔 믿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마음이 아팠다. 나중에 아무도 없는 데서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어머니 앞에선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나왔다. ‘열심히 하면 충분히 프로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땀 흘려 왔는데….

‘야신’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청각장애 선수 1호로 프로야구 진출을 꿈꾸던 박병우(21)에게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해체는 한 가닥 희망의 끈마저 끊어지는 아픔이었다.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고양 원더스 해체 소식에 “희망의 불씨가 꺼져 내 몸의 일부가 하나 떼어지는 아픔이다”고 말했듯 박병우의 심정이 그랬다.

고양 원더스가 어떤 구단인가. 2011년 프로 구단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당한 선수들을 모아 창단해 ‘패배자’들에게 꿈을 주던 구단이었다. 2012년 7월 투수 이희성이 LG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7월 KT와 계약한 외야수 김진곤까지 20명이 넘는 선수가 프로에 입단하는 기적을 일궜다. 황목치승(LG)과 안태영(넥센), 송주호(한화)처럼 프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도 나왔다. 8월 열린 프로야구 2015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는 포수 정규식이 고양 원더스 선수 중 처음으로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입성(LG에 2차 4라운드 지명)하기도 했다. 롯데는 9월 고양 원더스 출신 이병용과 안형권을 영입했다. 지난해 제물포고를 졸업한 뒤 프로에 노크조차 못해본 박병우도 고양 원더스에서 프로 진출의 꿈을 이루고자 했다.

박병우에게 야구는 꿈이자 희망이자 동반자이다. 9세 때인 2002년 11월 10일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를 보고 야구를 시작했다. 6-9이던 9회말 1사 1, 2루에서 삼성 이승엽이 LG 에이스 이상훈을 상대로 3점 홈런을 뽑아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와’ 하는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생후 10개월 때 쇠 젓가락을 전기콘센트 구멍에 찔러 넣은 사고 후유증으로 5세 때 청각장애 판정을 받은 그에게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었다.

인천 제물포고 재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뛴 박병우는 ‘투구 폼이 참 예쁜 선수’로 통한다. 고양 원더스에서 그를 지도한 김성근 감독이 동료 선수들에게 “공은 저렇게 던지는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인천 제물포고 재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로 뛴 박병우는 ‘투구 폼이 참 예쁜 선수’로 통한다. 고양 원더스에서 그를 지도한 김성근 감독이 동료 선수들에게 “공은 저렇게 던지는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버지를 졸라 바로 삼성 리틀야구단에 가입했다. 당시 대구에 살고 있던 그는 이승엽 선수가 뛰고 있는 삼성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다.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기 위해 본리초교로 전학도 갔다. 그때부터 야구는 박병우의 삶 그 자체였다.

청각장애가 있지만 지금까지 장애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본리초교를 졸업하고 소래중(경기 시흥)을 거쳐 야구 명문 인천 제물포고에서 야구를 했다. 어렸을 땐 장애인 비장애인 학교가 나뉘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삼성 리틀야구단 시절부터 비장애인 선수들과 차별 없이 똑같이 훈련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장애인 특수학교를 보내고 싶다는 뜻을 보였을 때도 박병우가 비장애인 학교를 고집했다.

“사람들은 제가 청각장애인이라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았을까 염려해 주세요.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전 친구들하고 잘 지냈으니까요. 다만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말하는 사람들의 입 모양을 보고 답을 해야 하는 것이 좀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요. 감독님이나 선배님들로부터 ‘듣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 아냐’라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 오해는 금방 풀렸어요.”

박병우는 야구를 잘했다. 소래중 시절엔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왔다. 제물포고로 진학한 것은 명문고이면서도 시흥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선수들처럼 투수와 야수를 겸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투수에 전념했다. 프로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가내영 감독이 “넌 폼이 좋으니까 투수를 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박병우는 2012년 가내영 감독 소개로 김성근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고교 3학년 때 테스트를 받게 해줬다. 김 감독은 “간결한 투구 폼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 폼이 예뻤다. 당시 우리 투수들에게 ‘공은 저렇게 던지는 거야’라고 말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난해 초 박병우를 정식 테스트를 거쳐 입단시켰다. 테스트 때 투구에 대해 몇 가지 가르쳐 줬는데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게 마음을 움직였다.

22일 경기 고양 원더스 훈련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박병우를 보며 안타까움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는 “이제야 야구에 대한 느낌을 알기 시작했는데…. 조금만 더 하면 2군 리그에서도 등판해 활약할 수 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투구 폼을 알려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표정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김 감독은 박병우를 처음 고양 원더스에서 봤을 땐 프로에 갈 확률이 10%였다면 지금은 30% 정도 된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노력하는 박병우에게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김 감독은 “장애가 있다는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공평하게 똑같은 위치에서 훈련시켰다. 처음엔 힘들어했는데 적극적으로 따라 했다. 선수들 간에도 거리감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선배와 후배들 관계도 잘 만들어 갔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혹독한 스승이었단다. 하지만 박병우로선 믿을 곳이 김 감독밖에 없었다. 지난해부터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7시까지 이어지는 사실상 ‘지옥 훈련’을 잘 참아냈다. 고양종합운동장 스탠드 계단 뛰기, 각종 기초 체력훈련과 웨이트트레이닝, 그리고 피칭. 피칭은 오전이나 오후 한 차례 100개 던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 만들기는 하루 두 차례 이어졌다. 프로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훈련을 꾹 참아내며 따라 하고 깜깜한 밤에도 혼자 자율훈련을 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프로 진출. 집도 고양시 대화역 근처로 옮겼고 집에도 운동기구를 마련해 틈만 나면 훈련에 매달렸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낙담하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 정기문 씨(55)의 마음도 찢어졌다. 박병우가 “어머닌 제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어요”라고 했지만 고양 원더스 해체 소식을 먼저 뉴스로 접한 정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직 우리 아들은 모를 텐데…. 이 소식을 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정 씨는 마음을 졸이며 아들이 오길 기다렸고 집에 나타난 아들이 눈물을 흘릴 땐 속으로 울었다. ‘우리 아들에게 야구가 어떤 것인데….’

아들이 처음 야구를 한다고 할 땐 말렸단다. 운동선수들은 선후배 관계가 엄하다고 하는데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오히려 야구가 (박)병우를 변화시켰다. 장애가 있으면 소극적이 될 수 있는데 야구를 통해 친구를 잘 사귀고 선후배들과도 잘 지냈다. 박병우를 인터뷰한 22일에도 그는 고양 원더스 훈련장에서 훈련한 뒤 9월 롯데에 입단한 이병용과 저녁을 먹었다. 얼마 전 이병용의 첫째 딸 돌잔치 때 조그만 선물을 했는데 고맙다고 근사한 저녁을 산 것이다. 이렇듯 박병우는 야구를 통해 함께 사는 법도 배웠다. 야구에서 자신감이 생기니 삶에서도 적극적이 됐다. 정 씨는 “어느 순간부터는 아들을 보러 야구장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웃고 떠들고…. 야구는 우리 병우에게 운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고양 원더스 해체 소식에 실망하기보다는 당혹스러웠다. 몇 년이 걸리든 천천히 준비해 프로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그 길이 끊길지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박병우에게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사라졌지만 청각장애 프로야구 선수 1호란 꿈은 버리지 않았다. 박병우는 요즘 주중엔 고양 원더스, 주말엔 한국농아인야구대표팀에서 훈련한다. 고맙게도 고양 원더스에서 11월 말까지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리고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대만에서 열리는 아시아농아인야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 자신을 인정해주고 활약을 기대해주는 팀이 있어 기쁠 뿐이다.

박병우와 김 감독 인터뷰를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김 감독이 프로야구 한화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병우는 “정말 기뻤어요. 감독님같이 훌륭한 분이 다시 프로야구 감독으로 가서 정말 잘됐어요”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김 감독이 박병우에게 한화 2군에서 훈련할 기회를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 감독도 발등의 불을 먼저 꺼야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팀을 재건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일단 한화 바로잡기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다. 김 감독은 박병우와 함께 인터뷰를 할 때 이런 말을 했다. “프로야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스포츠다. 이기고 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생에 뭘 선물할지, 뭘 가지고 국민들을 인도할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박병우는 “김성근 감독님이 늘 얘기했어요. 인간은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는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대다.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말을 믿고 열심히 더 훈련할 겁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그에게 아직 야구는 꿈이요 희망이요 인생 그 자체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청각장애#야구 투수#박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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