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공간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건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마포석유비축기지 문화공간化
현장설계 당선작 설명회

서울 마포석유비축기지 문화공원 재개발 프로젝트의 입면 개념도. 인공적으로 깎인 암반 사이로 노출된 콘크리트 옹벽이 35년 전 의도와 무관하게 드라마틱한 외관을 형성했다. 팀텐건축 제공
서울 마포석유비축기지 문화공원 재개발 프로젝트의 입면 개념도. 인공적으로 깎인 암반 사이로 노출된 콘크리트 옹벽이 35년 전 의도와 무관하게 드라마틱한 외관을 형성했다. 팀텐건축 제공
건축(建築)은 본디 ‘지어 세우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년 여름 착공을 목표로 기본설계를 마무리 중인 서울 마포구 석유비축기지 문화공원 재개발 프로젝트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건축임을 확인시킨다.

최근 서울 종로구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열린 프로젝트 현상설계 설명회에서 당선자인 홍찬기 팀텐건축 부사장은 “딱히 한 것 없이 10만1510m²의 부지를 날로 먹었다는 질문도 받아 봤다”며 웃었다. 홍 부사장, 김경도 ROA건축 소장, 허서구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가 공동 설계한 당선안의 골자는 ‘치워내 드러내기’다. 1979년 멀쩡한 매봉산 자락을 발파해 박아 넣은 높이 15m, 지름 15∼38m의 오일탱크 5개. 폭격을 염려해 쌓아 감춘 토사를 걷어내고 14년 전 용도 폐기된 녹슨 강철 탱크를 갈라진 암반 사이로 고스란히 노출시키겠다는 것이다.

“안보상 필요에 의해 처참히 파괴된 자연 역시 한 시대의 유물로 직시할 가치를 품고 있다. 비상시 한 달을 버틸 만큼의 석유를 안전하게 보관할 목적만 고려해 조성된 공간이다. 하지만 그 방치된 잔해를 그대로 벗겨 내보인 결과물은 역설적으로 만만찮은 미학적 호소력을 발휘한다.”

탱크 5개는 산등성을 따라 서쪽부터 동쪽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다. 발파된 편마암 절벽에 둘러친 콘크리트 옹벽과 강철 탱크는 기본적으로 원상 보존한다. 서쪽으로부터 첫 번째, 세 번째 탱크는 용접된 부분을 해체한 후 남쪽 진입로 쪽으로 전진시켜 하나의 탱크로 재조립한다. 첫 번째 탱크를 비운 자리는 옹벽 위에 유리 지붕을 덮어 작은 공연장으로 꾸민다. 세 번째 빈자리는 야외공연장으로 쓴다. 그 지하에 방문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들어간다. 재조립된 탱크 공간의 용도는 정보센터다.

두 번째 탱크는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지금은 반나절 쓸 분량도 안 되는 131만 배럴의 석유를 그토록 소중히 감춰야 했던 당시의 행위를 긍정하고 기억하는 공간이 하나쯤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네 번째 탱크는 전시시설이다. 탱크 내부에 유리 커튼 월을 돌려 세워 관람행위의 동선을 한 겹 덧댄다. 동쪽 끝 가장 작은 탱크는 내부보다 암반과 옹벽 사이 공간을 활용해 기념관 역할을 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홍 부사장은 “영역 전체를 인공의 흔적이 새겨진 하나의 커다란 암반 덩어리로 간주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말에 완공해 2017년 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건축#마포석유비축기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