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생각을 두께있는 음악에 담은 뮤지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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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故신해철 빈소 표정

가수 신해철에 대한 생전 대중의 호불호는 흑백으로 갈렸다. 그러나 27일 숨져 더이상 세상에 없는 그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1990년대 문화 아이콘에 대해 주변인들은 “천재적 재능과 추진력을 갖춘 그는 음악에선 양보가 없었지만 일상에선 누구보다 따뜻하고 예의가 바른 사람, 농담과 독설을 즐기지만 가족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선배와 웃어른에 대한 깍듯한 예의가 돋보인 인물”로 기억했다.

28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오후 1시부터 팬클럽 회원들을 비롯해 다양한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가수 거미 김광진 김수철 김현철 백지영 신대철 싸이 에픽하이 유열 이승기 조용필 조하문 한대수, 사진가 김중만, 배우 엄정화 김아중, 개그우먼 박경림도 있었다. 이승철은 “고인이 고교생일 때 1980년대 그룹 ‘부활’ 팬클럽 부회장이었다. 우리 연습실에 놀러 오던 그에게 ‘(힘드니까) 가수는 하지 마라’고 했는데…”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팬들은 영정 밑에 고인이 즐기던 양주 두 병과 담배 두 보루, 넥스트의 ‘라젠카’ CD 한 장을 두고 갔다. 생전에 고인이 “내 장례식장에서 울릴 노래”라고 했던 ‘민물장어의 꿈’은 영정 왼편에 설치된 미니스피커로 끝없이 반복 재생됐다. 유족들은 팬들의 조문까지 일일이 받았다. 전체 조문객의 80%가량이 일반 팬이었다. 유족들은 침착했지만 팬들은 오열하며 빈소를 빠져나왔다.

음악인들은 사회적 발언과 음악적 발언을 일치시킨 보기 드문 음악인으로 고인을 추억했다. 가수 박학기는 “오랜 생각을 두께 있는 음악으로 표현하는 가수, 음악으로 말을 할 줄 아는 빼어난 작사가였다”고 회고했다. ‘넥스트’ 전 기타리스트 김세황은 “이론에 기대기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느껴서 나온 것을 작품으로 승화한 천재”라고 했다. ‘넥스트’ ‘노땐스’(신해철 윤상)의 녹음 엔지니어였던 김은석 트리퍼사운드 대표는 “작업할 땐 주변 사람들이 이를 갈 정도로 완벽주의자 기질을 발휘했지만 돌아서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많은, 너무 여린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절친한 음악인들은 고인의 미발표곡 공개, 추모 앨범 발매와 공연 추진을 곧 논의할 계획이다.

고인의 음악이 끝까지 붙든 주제는 ‘삶, 사회, 죽음 속에서 난 누구냐’였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젊은 세대의 존재론적 고민을 준수한 노래에 담음으로써 ‘어린 왕자’ ‘데미안’에 비견될 음악적 성장소설을 집필했다. 우리 세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소년에서 어른이 됐다”고 했다. 고인의 노래 속에서 삶은 죽음과, 개인은 사회와 끊임없이 투쟁했다. 생의 의미를 캐는 의문문이 그의 노랫말엔 유달리 많았다.

가수 신해철의 빈소에 놓인 영정은 그가 2007년 아내 윤원희 씨에게 헌정한 재즈 앨범 ‘더 송스 포 더 원’의 표지 사진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다”던 사랑하는 아내였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신해철의 빈소에 놓인 영정은 그가 2007년 아내 윤원희 씨에게 헌정한 재즈 앨범 ‘더 송스 포 더 원’의 표지 사진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다”던 사랑하는 아내였다. 사진공동취재단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31일 오전 9시.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다. 유족들은 발인 전날까지 일반인 조문을 오후 1∼9시에만 받기로 했다.

마왕으로 불렸지만 한계와 싸운 철인(鐵人), 고독한 철인(哲人)이었던 한 사람이 돌아갔다. 철벽같은 안개의 성, 바로 자신에게로 영원히.

임희윤 imi@donga.com·이새샘 기자
#신해철#라디오#별세#넥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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