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무단횡단 이렇게 위험”… 日, 눈앞서 사고 재연 ‘충격요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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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서 배우는 어린이 교통안전]<上>똑바로 가르쳐야 생존한다

일본 이바라키 현 히타치나카 시 안전운행중앙연구소 교통공원에서 유치원생과 학부모들이 ‘교통사고 재연 교육’에 참여해 바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도로로 뛰어들도록 연출된 인형을 지켜보고 있다(왼쪽 사진).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의 한 청소년 교통학교에서 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경찰관 지도 아래 자전거 안전 교육을 받고 있다. 히타치나카=황인찬 기자 hic@donga.com·프랑크푸르트=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일본 이바라키 현 히타치나카 시 안전운행중앙연구소 교통공원에서 유치원생과 학부모들이 ‘교통사고 재연 교육’에 참여해 바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도로로 뛰어들도록 연출된 인형을 지켜보고 있다(왼쪽 사진).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의 한 청소년 교통학교에서 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경찰관 지도 아래 자전거 안전 교육을 받고 있다. 히타치나카=황인찬 기자 hic@donga.com·프랑크푸르트=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주차된 트럭 옆으로 한 아이가 차도를 건너는 순간 옆 차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그대로 아이를 치고 지나갔다. 아이는 털모자가 벗겨진 채 바닥에 참혹하게 나뒹굴었다.

실제 사고는 아니고 일본 이바라키(茨城) 현 히타치나카 시 안전운행중앙연구소의 교통공원이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을 위해 연출한 상황이었다. 전문 강사와 어린이 인형이 동원된 연출 사고지만 한국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관람석에는 유치원생 18명과 부모들이 앉아 이 광경을 지켜봤다. 인형이 차에 치이는 순간 관람석 곳곳에서는 “앗!” “어!” 등 짧고 굵은 탄성이 나왔다. 교육 담당자는 “부모가 아이에게 길을 건널 때 차가 오는지 좌우를 살핀 다음 건너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모의 사고 경험이 아이들의 뇌리에는 더 오래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 어린이 안전 위해선 강력한 ‘충격 교육’

선진국들은 아이들의 교통안전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충격 요법’을 쓰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논리적인 교육보다는 강한 메시지로 안전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초 취재한 일본 안전운행중앙연구소의 교통공원은 약 6만6000m²의 면적에 1991년 조성됐다. 지난해까지 유치원생, 초·중등학생 128만 명이 안전에 대해 배웠다.

회당 교육 시간은 2시간으로 아이들은 시청각 교육을 받은 뒤 실내에서 횡단보도 건너는 법을 배웠고 이어 야외교육에 나섰다.

관람객석에 앉은 아이들은 또래로 보이는 인형이 좌우를 살피지 않고 도로를 건너다 사고가 나는 장면을 본 뒤에 자전거 사고 상황까지 지켜봤다. 한 교육 담당자가 좌회전 길에서 큰 트럭 옆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트럭의 뒷바퀴에 깔리는 상황을 연출한 것. 물론 실제 깔린 것은 아니고 담당자가 길에 넘어지는 상황까지 보여줬지만 이번에도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사고 연출 뒤에 교육 담당자는 “자전거를 타고 회전을 할 때 차에 너무 붙어서 달리다가는 이런 사고가 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교통공원의 아오키 히토시 지도계장(50)은 “인형이 차에 치이는 사고 장면이 충격적이지만 그만큼 사고의 위험성을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다만 학교 관계자나 학부모들이 요청하면 참혹한 장면은 빼고 교육한다”고 말했다.

이날 원생들을 데리고 온 이지마 마모루 유치원 원장은 “정부의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연 2회 원생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다. 특히 연차를 쓰게 해서라도 부모를 꼭 참여하게 한다. 부모들이 본인의 안전은 잘 알겠지만 아이의 특성에 따른 교통안전을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경찰이 나서는 엄격한 교육

취재팀이 찾은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시 중심부의 한 청소년교통학교. 자전거를 탄 어린이들이 작은 횡단보도 앞에 한 줄로 서서 옆에 선 경찰관 지시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야광조끼를 입고 있었다. 헬멧과 무릎보호대 등 자전거 탈 때 필요한 보호장비도 잘 갖췄다. 횡단보도 옆의 신호등에 초록색 보행신호가 켜졌다. 경찰관이 앞으로 가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질서 있게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넜다.

독일은 학교에서 엄격한 교통안전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하나가 자전거 면허제도다. 단기간에 일회성 체험행사처럼 이뤄지는 한국의 자전거 면허와는 다르다. 모든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경찰의 감독과 교육 아래 자전거 면허 시험을 치러야 한다. 반드시 합격해서 면허증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시험에 응시하는 것은 교육과정에 포함된 의무사항이다.

이날은 이 청소년교통학교에 게오르크 뷔히너 초등학교 4학년 학생 20명이 경찰의 지도 아래 자전거 면허 교육을 받았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코스를 도는 동안 경찰관이 바르게 핸들을 잡는 법을 알려주거나 잘못된 수신호를 바로잡아줬다. 실습에 앞서 20분간은 교육장에 딸린 작은 교실에서 교통표지판 읽는 법 등 이론수업이 이뤄졌다. 역시 경찰관이 직접 수업을 진행했다. 아이들을 인솔해온 담임교사는 교실 뒤편에 앉아 아이들이 제대로 수업을 듣는지 지켜봤다.

합격하면 경찰에서 제작한 면허증을 주고 합격을 의미하는 스티커를 자전거에 붙여준다. 17년간 이곳에서 근무한 경찰관 라인홀트 슈머러 씨는 “면허증을 받는다는 건 부모의 동의 없이 혼자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도 된다는 걸 뜻한다. 자전거가 주요 통학수단인 독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데는 교통안전은 처음부터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독일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수업을 듣던 베이자 양(9)은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 직접 가르쳐주니 더 확실하게 배울 수 있어서 좋다. 배운 만큼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동행한 한국교통연구원 이지선 박사는 “돌발 행동이 많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수행하기 어려운 아이들의 행동특성상 처음부터 엄격하게 교통안전을 가르쳐야 한다. 자전거를 배우는 순간부터 경찰과 함께 도로에서 실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몸에 익히는 교육방식이 무척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히타치나카=황인찬 hic@donga.com / 프랑크푸르트=주애진 기자
#무단횡단#어린이 교통안전#충격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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