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로 풀어낸 아름다운 철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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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심포니 임헌정 예술감독, 취임후 첫 기획시리즈

지휘자 임헌정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 서울대 음대 교수의 세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휘자 임헌정은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 지휘자, 서울대 음대 교수의 세 역할을 동시에 맡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악기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이야기를 한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하죠? 철학과 문학, 인문학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풀어내려고 해요. 음악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것도 가슴으로 표현해주는 힘이 있잖아요.”

23일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난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코심) 임헌정(61)은 다소 들떠 있었다. 올 1월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뒤 10개월 만에 선보이는 첫 기획 시리즈 ‘토킹 위드 디 오케스트라’의 첫 공연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31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유의 미소와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1999년 향후 4년간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10곡)을 연주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랬더니 클래식에 정통하다는 기자들마저 ‘흥행이 어려우니 포기하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결과는 알려진 대로 정반대였다. 부천필 공연은 국내 말러 열풍의 도화선이 됐다. 그는 “그제야 언론이 제게 ‘말러 신드롬 주역’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며 “이번 기획시리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지휘자 임헌정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전략가다. 그는 1989년부터 올 초까지 25년간 부천필 지휘자로 활동하며 국내 교향악단 역사상 최장수 상임지휘자라는 역사를 썼다.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기획시리즈를 선보였다는 평가도 그의 몫이었다. 그는 2007년부터 6년간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에 도전해 ‘연주시간이 길고 재미가 없다’는 편견을 깨며 흥행을 이끌었다.

임헌정과 코심의 ‘궁합’도 현재까지 기대 이상이다. 세 차례 열린 정기연주회 흥행성적은 ‘A+’로 연속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표현은 냉정했다. “티켓 판매로만 보면 기대치를 충족시켰죠. 하지만 뭔가 2% 부족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임헌정표’ 기획시리즈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리즈의 첫 출발은 음악과 철학의 만남이다. “철학가 니체의 사상을 관현악으로 풀어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년)와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준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을 선보일 겁니다. 음악만큼 아름다운 철학은 없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어느덧 자신감이 묻어났다. 임 감독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연주자들의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곡”이라며 “대편성의 어려운 연주법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곡가와의 교감을 중시하는 지휘자다. 말러의 삶과 음악세계를 느끼기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호숫가에 있는 말러의 방을 서너 번 찾았고, 브루크너의 유해가 있는 성 플로리나 성당을 찾아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번 무대를 수놓을 슈트라우스, 바그너와는 어떤 방식의 교감을 나눴을까. “악보를 꼼꼼히 분석하며 슈트라우스와 바그너를 만났어요. 나 또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이니까…. 이 부분에 왜 피아노를 썼을까, 여기에서 한 박자 쉬고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작곡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이런 이유구나’ 하고 깨닫게 되죠.”

전략가 임헌정의 힘이 또 한번 발휘될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이 음악을 통해 사유하고, 삶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웃는 그의 미소 속에 언뜻 여유가 엿보였다. 3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02-580-1300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임헌정#코리아심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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