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TV 음악프로 불편한 ‘악마의 간격’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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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흐림. 악마의 간격. #129 Marilyn Manson ‘The Beautiful People’(1996년)

미국 로커 메릴린 맨슨. 동아일보DB
미국 로커 메릴린 맨슨. 동아일보DB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는다.

컴퓨터 키보드 위에선 곡예사, 피아노 건반 위에선 독수리. 피아노에 서툰 내게 젤 먼저 떠오르는 건 ‘젓가락 행진곡’이다. 양손 검지로 딱 두 개의 건반을 이리저리 눌러 본다.

지난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님포매니악’(2014년)을 보면서 악마의 음정에 대해 생각했다. 성교에 집착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속에서 성관계는 수학, 철학, 음악에 현학적이면서 해학적으로 비유됐다.

신성모독에 대한 은유가 적잖은 이 영화의 음악 얘기는 흥미롭다. 바흐의 폴리포니(polyphony·독립된 선율을 지닌 둘 이상의 성부로 이뤄진 음악)와 악마의 음정 이야기 말이다.

음악사에서 ‘악마의 음정’은 단2도나 감5도(또는 증4도)를 가리킨다. 감5도는 계이름 시와 파 사이 만큼의 간격이다. 건반 위에서 독수리 타법을 발휘해 보자. 건반 위에서 단 두 개의 음만으로 가장 불길한 소리를 내는 쉬운 방법은 이웃한 ‘시-도’를 동시에 치는 거다. 그 다음으로 음산한 소리는 ‘시-파’에서 난다. 18세기 유럽에서 이들은 ‘음악 속 악마(diabolus in musica)’로 불렸다. 거슬리는 소리를 내는 데다 부르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록 음악에는 불길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악마의 음정을 이용한 곡이 많다. 블랙 새버스부터 콘까지, 경쾌함이나 슬픔보다 음산함을 선호한 밴드는 다 한 번씩, 아니 여러 번씩 이걸 썼다.

‘님포매니악’을 여는 독일 록 밴드 람슈타인의 ‘날 이끌어줘(F¨uhre Mich·2009년)’도 감5도를 음악적 테마로 쓴 곡이다. 그 주제부 화성 진행은 미국 록 밴드 메릴린 맨슨의 ‘더 뷰티풀 피플’과 똑같다. D5-G#5. D5는 가장 굵은 줄을 보통보다 한 음 더 낮게 조율한 전기기타에서 내는 육중한 코드다. ‘레-라♭’과 ‘라-미♭’이 평행으로 움직이니 감5도와 단2도(‘라♭-라’ ‘레-미♭)가 이리저리 반복해 충돌한다.

난 이 악마의 음정을 요즘 TV 음악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떠올린다. 음정을 뜻하는 영어 단어 ‘interval’은 ‘간격’도 의미한다. ‘악마의 편집’보다 더 신경을 거스르는 ‘악마의 간격’들. 5∼60초짜리 긴장과 이완의 반복들. 수시로 틈입하는 무수한 직간접 광고들의 분자 구조가 이루는 그 불편한 간격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악마#메릴린 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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