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앉아 北붕괴만 바라면… 김정은 늙을때까지 힘들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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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커밍스 美 시카고大 교수에 듣는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인터뷰

23일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왼쪽)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그저 서울에 앉아서 북한이 붕괴되기만 기다린다면 김정은이 할아버지가 돼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 할아버지만큼 오래 산다면 김정은 정권 종식은 82세가 되는 2060년대 중반이다”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3일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왼쪽)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는 “그저 서울에 앉아서 북한이 붕괴되기만 기다린다면 김정은이 할아버지가 돼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 할아버지만큼 오래 산다면 김정은 정권 종식은 82세가 되는 2060년대 중반이다”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이한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진 지 내년이면 70년이 된다. 둘로 갈라진 남과 북은 여전히 대치 중이다. 19일에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내 군사분계선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한국군 최전방 감시초소(GP)와 북한군 GP 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에 앞선 4일에는 북한군 실세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해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 3명이 남한을 ‘깜짝’ 방문해 ‘화해의 손’을 내밀기도 했다. 이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한반도 정세는 불안정해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전쟁의 기원’을 펴낸 한반도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23일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과의 대담에서 “북한은 많은 부분에서 비난받을 만한 체제”라면서도 “황병서 국장과 최룡해 비서의 (남한) 방문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 좋은 신호다”라고 평가했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코리아(SSK)가 후원한 국제학술대회 ‘갑오년의 동아시아와 미래 한국: 1894와 2014’ 참석차 22일 방한했다. 대담은 연세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손 원장이 커밍스 교수를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손열 원장(이하 손)=‘현재의 북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가.

▽브루스 커밍스 교수(이하 커밍스)=왕조(dynasty)다.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5주 넘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많은 이가 쿠데타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 대답은 “아무 일도 아니다. 나타날 것이다”였다. 발목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곳이 아팠을 수도 있다.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도 몇 주 동안 모습을 감추곤 했다.

북한은 많은 부분에서 비난받을 만한 체제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다. ‘시스템 북한’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점은 증명됐다. 북한의 특권계층은 김정은에게 의존하고 있다.

▽손=3대 세습이 유지 가능하다는 뜻인가.

▽커밍스=나는 1989년부터 북한 정권이 붕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당시 한국의 처가 식구들마저 내게 “독일처럼 우리도 통일의 순간이 왔다. 제발 입 좀 다물어라”라고 말했다(웃음).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옳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북한이라는 시스템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시스템은 현대적 군주제(monarchy), 즉 왕조다. 북한 사람들은 오직 두 개의 전통적인 시스템만 경험해 봤다. 하나는 조선 왕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왕제(일제강점기)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민주주의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북한의 특권계층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비상한 정치적 능력을 보여 왔다. 아마도 북한의 가장 큰 문제는 붕괴가 아닌 사상 최악으로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일 것이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평양에 가지 않고 서울에 왔다. 요즘 중국의 파워를 생각한다면 (악화된 관계는) 북한에 이롭지 않다.

▽손=북한 왕조가 선택한 생존방식이 핵이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하나.

▽커밍스=북핵 문제는 현재 교착상태다. 북한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인정하길 바란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같은 생각이다. 1991년 북핵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남북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한 이후 클린턴 전 장관이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지금에는 그 어떤 때보다도 이러한 교착상태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미국이 북한과의 비핵화 논의에 나설지도 매우 비관적이다. 거의 25년 동안 북핵에 대한 미국의 전제는 ‘핵 프로그램 포기’였다.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무엇을 기초로 북한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아무것도 안 하는, 그래서 정책 아닌 정책처럼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과 함께 수차례 북핵 불용을 천명했지만 과연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커밍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9∼2000년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포기를 거의 이끌어 냈다. 2000년 10월 당시 북한 군부의 최고 실세였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2000년에 이뤄졌던 합의를 되살리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 1, 2년 차에 가능할 수 있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기회를 놓쳤다.

▽손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정당 간 대립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른바 ‘정치쇠퇴(political decay)’ 이야기가 나올 만큼 미국의 리더십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핵 문제의 교착을 이런 현실과 연결해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커밍스=분명 그렇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금융위기 극복과 건강보험 개혁이라는 두 개의 큰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은 1기에는 재선을 위해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2기에 접어들면 외교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예외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외교 문제에 큰 관심이 없고 준비도 안돼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미국이 북핵 불용만 외치고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문제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북한은 쿠바와 같은 범주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손=북한이 쿠바와 같은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커밍스=미국은 쿠바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1960년 쿠바 제재조치를 시행했지만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이 그런 쿠바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남한이 더 많은 노력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한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 잠깐 폐쇄된 적이 있긴 했지만 개성공단이 여전히 활발히 가동 중이라는 사실은 남북한 모두 경제적 협력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협력을 계속 이어가고 가능한 한 더 확대해 나가는 게 좋다고 본다.

▽손=동아시아로 범위를 넓혀보자. 역사 문제로 일본에 대한 한중 공조가 형성되면서 역사 문제가 한미일 협력에 쐐기(wedge)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역사 문제에, 또 한일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커밍스
=미국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갖는 불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적이 없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일본을 선호한다. 일본은 1945년 패전했으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2년여 만에 미국과 파트너가 됐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자금 지원 등으로 미국은 일본에서 미일동맹과 결합된 보수적 정당 지배 체제를 확립했다. 이는 매우 굳건한 구조였고 미국은 일본이 과거의 잘못과 마주하도록 밀어붙인 적도 없다. 따라서 일본이 자신들의 제국주의 역사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에는 미국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도발적 발언들은 미국이 일본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군사적 도움 없이 자국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아베 총리도 그런 말들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중 모두에 지금보다 더욱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갈등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성노예(일본군 위안부)’ 등 한국과 중국이 겪은 일본의 잔혹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이라고 본다.

▽손=한국전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남침유도설’로 인한 사회적 논쟁은 옛 소련의 문서가 공개된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1981년 나온 한국전쟁의 기원이 남침유도설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는데….

▽커밍스
=문서보관소에서 처음으로 한국전쟁의 본질을 이해한 이후 단 한 번도 내 생각을 바꿔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의 본질은 내전이다. 미국과 옛 소련, 북한과 남한 모두에 책임이 있는 내전이다.

1949∼1950년 남북의 갈등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이 김일성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남한이 38선에서 무엇을 했는지 보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다. 최근 김일성이 소련에 남한을 공격해 달라고 35번이나 요청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이승만이 미국에 똑같은 요청을 한 사례를 35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난 모든 당사자의 입장에서, 모든 당사자의 문서에서 전쟁을 바라봐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이라는 단 한 나라만 제외하고 각국의 많은 문서를 갖고 있다. 1990년(한국전쟁의 기원 2권이 나온 해) 이후 새롭게 공개된 그런 문서들을 다룬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새 책을 2, 3년 안에 낼 계획이다. 학자의 삶을 살면서 난 언제나 이념과 거리를 두려고 해왔다. 뭔가를 말할 때는 늘 문서보관소의 문서를 토대로 했다.

정리=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브루스 커밍스#미국 시카고대학교#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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