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27>이우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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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성
―이우성(1980∼)

금요일 밤인데 외롭지가 않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 있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다
줄넘기를 하러 갈까
바닥으로 떨어진 몸을 다시 띄우는 순간엔 왠지 더 잘생겨지는 것 같다
얼굴은 이만하면 됐지만 어제는 애인이 떠났다
나는 원래 애인이 별로 안 좋았는데 싫은 티는 안 냈다
애인이 없으면 잘못 사는 것 같다
야한 동영상을 다운 받는 동안 시를 쓴다
불경한 마음이 자꾸 앞선다 근데 내가 뭐
그래도 서른 한 살인데
머릿속에선 이렇게 되뇌지만 나는 인정 못하겠다
열 시도 안 됐는데 야동을 본다
금방 끈다
그래도 서른 한 살인데
침대에 눕는다
잔다 잔다 잔다
책을 읽다가 다시 모니터 앞으로 온다
그래도 시인인데
애인이랑 통화하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애인이랑 모텔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야동 보느라 회사 가느라 못 쓴 시는 써야지
만두 먹어라 어른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행히 오늘은 바지를 입고 있다           
     

제목도 재미있다. ‘이우성’은 가족과 사는 서른한 살 미혼남, 직장인이며 시인이다. 화자의 사생활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가 엿보인다. ‘어제는 애인이 떠났다’니 오늘은 혼자 밤을 보내는 첫 금요일인데 화자는 아무렇지도 않다. 화자가 워낙 ‘쿨’해서가 아니라 ‘원래 애인이 별로 안 좋았’기 때문에. 그래도 싫은 티 안 내고 사귀었던 건 ‘애인이 없으면 잘못 사는 것 같’은데 얼굴이 그만하면 괜찮아서다. 화자의 전 애인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런데 친구가 전화를 한다. 술집에서 여럿이 불타는 금요일을 보내다가 “야, 뭐하냐? 여기 홍대 앞인데 나와라!” 불러내는 전화였을까. 외롭지는 않은데 ‘집에 있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단다. ‘애인이 없으면 잘못 사는 것 같다’는 자의식이 또 발동되는 것이다.

시시한 연애도 연애는 연애. 그동안 데이트다 뭐다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됐는가. 이제 시를 써야지! 외출하지 않고 진득하니 앉아서는 습관처럼 야동을 다운 받는다. 문득 떨떠름하다. 시 쓰겠다는 놈이 야동을 보냐? 야동이 뭐 어때서? 내 나이가 몇인데…. 어이구, 그 연세에 혼자 야동이나 보고 앉았냐? 자신이 한심해서 이내 야동을 끄고, 어쩐지 기운이 빠져 ‘침대에 눕는다’. 그렇게 잠이 들어, ‘잔다 잔다 잔다’! 늘어지게 자고 책을 읽고 시를 쓰고, 모처럼 한갓지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는 주말. 끝 두 행이 웃음을 유발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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