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한국에도 마윈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헌진 산업부 차장
이헌진 산업부 차장
얼마 전 중국 인터넷을 서핑하다 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왜 내가 마윈에게 감사하는가’라는 제목의 독자투고였다. 기고자는 “그는 나처럼 학력이 별로인 사람도 희망을 갖게 했다. 나처럼 ‘관얼다이(官二代·고위 관료의 자녀)’ ‘푸얼다이(富二代·부유층 자녀)’가 아닌 사람도 배짱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중국에 마윈(馬雲·50) 열풍이 거세다. 그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알리바바의 창업자로 지난달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되면서 일약 중국 최고 부자 자리에 올랐다.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 중인 마윈 관련 책은 311종에 이른다. 그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는 팔로어가 1610만 명이다. 마윈이 알리바바를 창업한 곳인 지방도시 항저우(杭州)의 평범한 아파트 후판화위안(湖畔花園)에도 발길이 이어진다.

중국인들에게 마윈은 그냥 거부(巨富)가 아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의 인생 승리를 보여준 영웅이다. 마윈은 170c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에 깡마른 체구의 볼품없는 외모에다 학벌 연줄 돈도 없었다. 그는 35세 때인 15년 전 창업을 하면서 “내가 성공한다면 중국인 80%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윈의 성공에서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보통 중국인들은 희망을 본다.

마윈을 특히 돋보이게 하는 점은 청년 사랑과 공동체정신이다. 그는 자기 사업의 성공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전직 영어교사 출신답게 마윈은 “시간을 내 창업의 경험을 나누겠다”고 말하고 실천했다.

그는 중국 기업인 중에 두드러지게 공개 강연을 많이 해온 인물이다. 중국 인터넷에 마윈의 강연 동영상 수백 편이 돌아다니는 것도 이 덕분이다. 그는 반복적으로 중국인, 특히 청년들에게 꿈과 도전, 불굴의 의지를 주문해 왔다. 약 500만 명이 본 마윈의 명언록 동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들어 있다.

“영원히 포기하지 마라. 결국은 기회가 있다.” “남자의 생김새는 종종 재주와 상반된다.” “오늘은 매우 잔인하고 내일은 더 잔인할 것이지만 모레는 아주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절대다수가 내일 저녁에 죽는다.” “(세상에) 돈은 진짜로 모자라지 않고 (돈을 버는) 아이디어도 온 천지에 널려 있다. 중국에 부족한 점은 아이디어를 오랫동안 부단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창업이다.” “영원히 잊지 마라.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아가 그는 최근 재산의 약 8분의 1인 3조 원 안팎을 공익기금으로 출연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중화권 최고 수준의 공익기금 출연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눈길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한국인들은 한때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해봤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 뜨겁게 반응했다. 한국인들은 이런 말에 자극받아 꿈을 꾸고 한계에 도전했다.

20여 년이 흘렀다. 한국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의해 자식의 삶이 결정되는 ‘상속형 사회’가 됐다고 한다. 중국의 ‘푸얼다이’ 세태와 다른 게 없다. 한국 청년들이 꿈을 잃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각종 통계는 한국인들이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택하는 현상을 뚜렷이 보여준다. 평범한 사람도 노력과 능력으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롤모델이 한국에도 절실하다.

이헌진 산업부 차장 mungchii@donga.com
#정주영#김우중#이건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