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개미가 교육을 하고, 쥐가 배꼽 빠지게 웃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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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깨닫는다/버지니아 모렐 지음·곽성혜 옮김/452쪽·1만6000원·추수밭
6년간 11개국 동물 마음 연구
“인간만이 마음과 감정 가진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건 편견”

서로 교감을 나누는 늑대 한 쌍(위쪽)과 코끼리 한 쌍. 동물이 생각과 감정, 나아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신 동물행동학과 비교심리학에 따르면 동물도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다양한 사고와 감정을 가진다. 추수밭 제공
서로 교감을 나누는 늑대 한 쌍(위쪽)과 코끼리 한 쌍. 동물이 생각과 감정, 나아가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신 동물행동학과 비교심리학에 따르면 동물도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다양한 사고와 감정을 가진다. 추수밭 제공
예전에는 마당에서 개를 키우는 가정이 많았다. 남자애들이 개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 벌어진 개의 입에 슬쩍 꼬리를 물게 하거나 꼬리에 실로 구슬을 매는 경우도 있었다. 꼬마들은 아마 ‘동물이라 약간의 고통만을 느낄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니 당시 개들은 제법 분통을 터뜨렸을 듯싶다.

“얄미운 주인 ‘놈’…. 장난이 너무 심한데. 화를 낼까. 아니야. 어제 먹은 북어 대가리를 또 얻어먹으려면 참아야지!”

이 책은 ‘인간만이 마음과 감정을 가졌다’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파괴한다. 과학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6년간 11개국에서 동물의 인식과 마음을 연구하는 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일생을 동물과 보낸 과학자들을 취재한 결과를 토대로 ‘동물도 정신과 마음이 있는지’, ‘뇌를 사용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분석했다.

과거엔 동물을 ‘복잡한 로봇’ 정도로 여겨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은 배고픔, 통증 등 욕구와 감각만 경험한다고 봤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동물은 물질로만 이뤄져 정신과 영혼이 결여된 존재다. 이후 다윈이 ‘인간의 몸이 진화하듯, 인간의 뇌와 정신도 진화했다. 따라서 동물도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정신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물행동학, 동물심리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동물, 나아가 곤충마저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야크 판크세프 워싱턴주립대 심리생물학과 교수의 실험 결과 쥐는 ‘놀이’를 즐겼다. 두 마리 이상 모이면 ‘함께 놀자’며 장난을 걸기도 하고 지루하면 장난을 거부한다. 놀이 도중 짧고 크게 ‘찍’ 소리를 내며 웃음을 지을 정도다.

인공둥지 속 앵무새 부부를 수년간 관찰해보니 수시로 ‘먹이 가져왔어’, ‘수고했어’, ‘섹스부터 할까’ 등 상당한 수준의 대화를 했다. 신경생리학자 존 릴리가 한 여성을 물속에 들어가게 한 후 수컷 돌고래에게 영어 단어를 가르치게 하자 수컷 돌고래는 이 여성에게 자주 성적 구애를 했다. 돌고래는 발기된 성기를 만져줘야만 영어 단어를 외우려 했다.

개미의 경우 선생 개미가 물과 먹이를 찾는 법을 학생 개미들을 모아 가르친다. 곤충은 선천적으로 제한된 행동만 한다는 것과 달리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코끼리, 자신이 애벌레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듯한 나방 이야기도 나온다.

동물 관련 연구 결과들이 에피소드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과학 소설을 읽는 듯해 지루하지 않다. 책 말미에 저자는 ‘이제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밟아 죽였던 개미 생각이 났다. 의약 실험에 쓰인 동물과 구제역 방지를 이유로 산 채로 매장된 가축들까지 머리를 스쳤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동물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이상 우리와 동물의 관계는 변할 수 있을까요?”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동물을 깨닫는다#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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