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한국 여자 핸드사이클 화제의 두 선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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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km 압도적 1위 이도연
창던지기 등 육상 한국新3개
국제대회 출전 위해 종목 바꿔
입문 1년 뒤부터 우승행진

《 두 발이 있어도 걸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탈 수도 없었다. 추락 사고를 당하고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 앉았던 두 여자가 이제 자전거를 탄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발 대신 손으로 페달을 돌리는 42세 동갑내기 핸드사이클 선수 이도연과 이승미가 22일 함께 인천 송도를 질주하며 각각 장애인 아시아경기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
▼세바퀴 세상 평정 ‘42세 鐵女’▼

16.2km 압도적 1위 이도연
창던지기 등 육상 한국新 3개… 국제대회 출전 위해 종목 바꿔… 입문 1년 뒤부터 우승행진

우승을 의심한 이는 없었다. 문제는 자기와의 싸움이었을 뿐.

‘핸드사이클 여왕’ 이도연이 22일 인천 송도 사이클 도로코스에서 열린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 핸드사이클 여자 개인전 16.2km 1-5 타임 트라이얼(시차를 두고 따로 출발해 기록으로 순위를 결정)에서 27분44초11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위 이승미와 5분 넘게 차이 나는 압도적인 기록이었다. 하지만 레이스를 마친 이도연은 “26분대 후반을 노렸는데 크게 부족했다. 이 정도로는 세계무대에서 상위권에 들어갈 수 없다. 각성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도연은 한국 핸드사이클에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다. 입문 1년 만인 5월 국제사이클연맹(UCI)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7월 UCI 스페인 월드컵 2관왕, 9월 UCI 미국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등 3개 장애인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정상에 올랐다. 아시아 선수로 UCI 장애인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이도연이 처음이다.

세 딸의 엄마이기도 한 이도연은 19세 때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충격으로 15년 넘게 집에만 있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탁구를 시작하며 세상으로 나왔다. 6년 동안 탁구를 했지만 선수층이 두꺼워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고 판단한 이도연은 2012년 육상으로 종목을 바꾼 뒤 그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해 창, 원반, 포환던지기에서 모두 한국 기록을 세워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태극마크’가 문제였다. 패럴림픽이나 장애인 세계선수권대회 등에 출전하려면 기준기록을 통과해야 하는데 세계 수준과는 차이가 컸다. 그래서 눈을 돌린 종목이 핸드사이클. 2007년 핸드사이클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선수들을 육성해 온 대표팀 류민호 감독(47)은 “지난해 5월 이도연에게 전화를 받았다. 직접 만나 테스트를 했는데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직감했다. 사이클을 타며 아주 즐거워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도연의 운동 학습 능력은 남자 선수보다 낫다.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훈련도 열심히 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70% 정도다. 30%를 더 갖추면 패럴림픽에서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팔로 세상 누비는 ‘우체국 공무원’▼

동갑 이도연 이어 2위 이승미
입문 2년만에 어엿한 국가대표… “주말엔 잠실∼의정부 100km 왕복… 국감으로 바쁜 동료들에게 미안”


핸드사이클 대표 이승미(왼쪽)가 7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완주한 뒤 이탈리아 대표 알렉스 차나르디에게 축하 키스를 받고 있다. 포뮬러원(F1) 레이서였던 차나르디는 2001년 사고를 당한 뒤 핸드사이클 선수로 변신해 세계 정상에 올랐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핸드사이클 대표 이승미(왼쪽)가 7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완주한 뒤 이탈리아 대표 알렉스 차나르디에게 축하 키스를 받고 있다. 포뮬러원(F1) 레이서였던 차나르디는 2001년 사고를 당한 뒤 핸드사이클 선수로 변신해 세계 정상에 올랐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한 번이라도 자전거를 타본 사람은 안다. 자전거 위에 있는 동안에는 슬플 겨를이 없다. 바퀴가 몇 개라도 그렇다. 제주도에서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던 이승미는 세 바퀴를 만나며 인생이 바뀌었다. 7년 전 서울 발령을 받은 그는 2년 뒤 핸드사이클 동호회 ‘세바퀴’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어엿한 국가대표가 돼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소아마비 때문에 어머니가 통학을 도와주셔서 혼자 휠체어도 움직여 본 적이 없었어요. 고맙기도 했지만 늘 얽매여 있는 것 같았죠. 육지로 가고 싶었는데 제주도에서 응시할 수 있는 국가 공무원 시험은 우체국밖에 없더라고요. 제주도에서 13년 버텼더니 서울로 보내 주더라고요(웃음).”

22일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 핸드사이클 여자 개인전 16.2km 1-5 타임 트라이얼 결승선을 통과한 그는 제일 먼저 담요를 찾았다. 레이스가 열린 송도 도로코스는 이날 섭씨 17도 안팎이었지만 레이스를 끝낸 그의 몸에서는 사우나에서 막 나온 듯 김이 피어올랐다. 누군가 당분을 보충하라며 가져다준 도넛을 먹는데 손이 떨려 코에 설탕이 묻었다.

“자전거를 타면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로워져요. 또 사람들이 이렇게 좋잖아요. 보통 주말이면 서울 잠실에서 경기 의정부까지 100km 정도 왕복하고 나서 국수 한 그릇을 같이 먹는데 정말 살맛이 나요. 집에만 계신 분들, 특히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은 장애인께는 꼭 ‘세바퀴’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날 경기장에는 이승미와 함께 일하는 우정사업본부 예금사업단 직원들이 나와 응원했다. 이승미는 지난달 29일부터 휴가를 내고 연습에만 매달렸다. 그는 이날 은메달을 따 시상자로 나선 김준호 우정사업본부장에게 직접 메달을 받았다.

“보통 1주일만 출장 가도 동료들 전화가 빗발치잖아요? 이번에는 국감(국정감사) 기간인데도 동료들이 저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러는지 아무도 안 찾더라고요. 당장 27일부터 출근인데 진짜 미안하죠. 아, 그때는 국감 끝나는구나. 더 미안해지네. 그래도 메달 땄으니 봐주시겠죠?”

올 연말 우정사업본부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그 역시 이삿짐을 꾸려야 한다. 세종시에서 그가 제일 먼저 할 일은 당연히 ‘세종 세바퀴’ 만들기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이도연#이승미#핸드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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