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내 여자를 위해서라면…” 처절하고 잔혹한 사랑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0월 23일 06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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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에서 주연을 맡은 안재욱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에게 ‘노래도 연기’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에서 주연을 맡은 안재욱은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에게 ‘노래도 연기’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초연 때보다 더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성
탱고리듬으로 푼 타페 - 라리쉬 대결 신선
루돌프 안재욱 연기·가창력은 역시 일품

2012년 초연보다 확실히 재미있게 보았다. 초연이 어쩐지 정치극과 애정극 사이에서 오락가락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무대는 초점이 딱 맞은 것이다.

한 줄로 표현하자면 ‘사랑은 죽음보다 힘이 세다’가 아닐까.

정치도 사랑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고 싶고, 무엇이든 되어 보이고 싶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이고픈 욕망은 태초의 남자 이래 단 한 번도 부정되어 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도, 핏줄도 꺾을 수 없는 본능이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렇다.

황태자 루돌프(안재욱 분)는 연인 마리 베체라(최현주 분)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그는 황제인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헝가리의 왕위에 오르려 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작품 곳곳에는 이들 연인의 비극적인 최후를 암시하는 ‘예표’가 곳곳에 뿌려져 있다. 마리 베체라의 명대사 “하루하루 조금씩 죽어가는 것보단 한번에 모든 걸 끝내는 게 더 낫기도 하다”가 대표적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루돌프는 술집에서 권총을 빼어든다.

루돌프와 마리의 스케이트장 장면은 언제 보아도 달콤하다. 하지만 딱 한 장면을 꼽으라면 타페 수상(최민철 분)과 라리쉬 백작부인(이은율 분)이 대립하는 장면이다. 타페 수상과 그의 옛 연인 라리쉬 백작부인의 불꽃 튀는 맞대결 장면을 강렬한 탱고 리듬으로 푼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타페 수상과 마리와의 대결은 좀 더 치열하다. 사랑이 얼마나 여인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최현주는 마리 베체라와 무척 잘 어울려 보인다. 아름답고 품위가 있으면서도 정의감을 지닌 강한 여인이다. 이은율은 라리쉬 백작부인이라는 캐릭터를 단숨에 주연급으로 끌어 올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배역 중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중립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과연 악역 타페 수상이 사랑에 빠질 만한 여인이다.

전수미는 ‘악녀’로만 보이던 황태자비에게 ‘연민’의 옷을 입히는 데에 성공했다. 마리와 성당에서 마주치는 장면에서 황태자비는 ‘타당한 분노’를 마리에게 터뜨린다.

초연부터 루돌프로 출연하고 있는 안재욱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노래는 ‘노래도 연기’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안재욱의 공연날에는 객석에 일본관객이 다수 눈에 띈다. 커튼콜에서 안재욱이 등장하자 어깨를 흔들며 ‘귀엽게’ 춤을 추던 일본 중년여성 관객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장면은 오래오래 잔상을 남긴다. 마이얼링에 남은 두 사람이 침대에 오르면 조명이 꺼진다. 이윽고 울리는 두 발의 섬뜩한 총소리. 다시 조명이 들어오면 두 사람이 침대에 쓰러져 있다. 이윽고 루돌프의 팔이 툭 떨어진다.

‘내 남자를 위해, 내 여자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렇게 처절하고 아프고 잔혹한 사랑을, 우리는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세상에 평범한 인생이 없는 것처럼, 평범한 사랑도 없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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