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근형]에볼라 파견, 돌다리 두들기듯 안전대책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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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형·정책사회부
유근형·정책사회부
정부가 다음 달 초부터 에볼라 바이러스 발생 지역인 서아프리카로 보건인력을 파견하기로 했다. 에볼라 위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주축 국가로서 적절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서두르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16일 박근혜 대통령 발표 뒤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의료진 안전 대책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미국처럼 현지 의료진 감염뿐 아니라 국내로 에볼라가 유입되는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까지 에볼라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처럼 체액을 통해서만 감염되므로 확산 우려가 적다고 여겼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호흡기 전파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가설이 나오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계 각국의 의료진은 방호복, 고글, 입자가 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미만인 병원균까지 걸러주는 보호마스크 ‘N95’를 착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파견되는 의료진들의 방호장비는 호흡기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하에 착용하는 ‘D플러스’ 등급의 장비다. 전신 보호복, 보호두건, 장갑, 고글(D등급)에 방수용 앞치마와 안면 보호구가 추가로 지급된다. 하지만 얼굴이 공기와 완전히 차단되는 수준(C등급)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에볼라 환자를 직접 보는 의료진의 경우 호흡기 전파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필터가 장착된 보호구를 지급해 온몸이 외부와 차단되는 수준(C등급)은 돼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국민 건강을 생각하면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C등급의 보호장비는 약 30만 원. D플러스(약 5만 원)의 6배 수준이다. 의료진 20명이 방호장비를 하루 하나씩 6주 동안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약 2억 원의 예산이 더 들어간다.

의료진 파견은 군대 파병과는 다른 차원의 위험부담이 뒤따른다. 파견 의료진이 감염되면 당사자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내로 이송됐을 경우 국내 의료진 등의 감염 가능성도 생기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이 그랬다. 미국 내 두 번째 사망자는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간호사였다. 미국의 사례를 잊지 말고, 의료진 안전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유근형·정책사회부 noel@donga.com
#에볼라 파견#에볼라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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