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장차관 뒷조사시키는 게 ‘국정원 개혁’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3시 00분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이 각 부처 장관과 차관급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직무성과 평가와 평판 조회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과거 정부 때부터 개각을 앞두고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를 은밀하게 했다. 그러나 이병기 국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관여’ 네 글자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겠다”고 한 사람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 개입 논란을 살 수 있는 활동은 다시 하지 말아야 한다.

역대 정부의 인수위원회는 예외 없이 국정원의 국회 정부부처 상시출입 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없던 일로 되거나 조직을 축소한 것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에 그쳤다. 지금 국정원은 역대 국정원과는 다르다. 대통령선거 댓글 사건 등으로 위상이 실추돼 강도 높은 개혁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 두 달 전에는 국정원 요원의 국회 정부부처 상시출입을 금지하고 관련 조직도 축소 폐지한다고 발표까지 했다. 국내 정보를 수집·분석하다 보면 종종 옆길로 빠져 국내 정치에 악용되는 일이 있는데 그 싹을 자르기 위해 상시출입을 막은 것이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국내 정보 보고에 관심을 갖는 한, 정보기관의 속성상 그 수요에 맞추려고 기를 쓸 수밖에 없다. 심지어 청와대가 계속 국정원에 개각용 평가보고서 같은 것을 요구하면 국내 파트 축소와 같은 국정원 개혁은 결국 물 건너가게 된다. 이 원장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과거 관행에 안주하기보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도록 한 지시를 벌써 뒤집은 것인가.

90명이 넘는 고위 공직자의 평판 조회를 위해 국정원 요원들이 여권 인사 등을 만나 짧은 시간 동안 탐문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할지도 회의적이다. 정부 부처에 요원들이 상시출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장차관의 직무평가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국무조정실이 해마다 부처별 업무평가를 실시하며, 이 과정에서 장차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 청와대 내에도 국정기획수석실에서 그런 기능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보기관이 기준도 모호한 평가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 실천 의지나 충성도를 점검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과거 국정원은 평소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의 ‘인사 존안자료’를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 공직자의 비리 정보는 청와대를 거치거나 바로 검찰 등 수사기관에 넘기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정보력을 바탕으로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정원은 지금 대북 및 대외정보력 강화에 힘을 모두 쏟아도 모자랄 판이다. 이제는 청와대가 대통령직속 정보기관을 개각용 뒷조사에 동원하는 잘못된 관행을 단절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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