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예술이 된 요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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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불리의 철학자/장 폴 주아리 지음·정기현 옮김/240쪽·2만1000원·함께 읽는 책
14년간 미슐랭가이드 최고등급… 스페인 북부 작은 식당 ‘엘불리’
천재셰프 아드리아의 철학 해부… 미각-시각 넘어 知的 포만감 선사

‘엘불리’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요리 ‘루제 가우디’. 반대로 브루노 만토바니 프랑스 파리음악원장은 엘불리 요리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만들었다. 요리가 다른 예술과 소통된다는 의미다. 함께읽는책 제공
‘엘불리’의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요리 ‘루제 가우디’. 반대로 브루노 만토바니 프랑스 파리음악원장은 엘불리 요리에서 영감을 얻어 곡을 만들었다. 요리가 다른 예술과 소통된다는 의미다. 함께읽는책 제공
‘캬∼ 국물이 예술이야, 예술.’

6000원짜리 부대찌개를 먹으면서도 예술을 운운한다. 하지만 실제로 음식을 예술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기가 막힌 요리를 만들어도 기껏해야 장인(匠人) 정도로 불릴 뿐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저자는 ‘요리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이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책에 담았다. 출발지는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한 작은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 이름은 ‘엘불리’. 매번 새로운 조리법과 요리를 선보여 14년간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이다. 매년 250만 명의 예약자 중 8000명만 식사할 수 있다. 운 좋게 엘불리에서 식사하던 저자는 수석주방장 페란 아드리아를 만난 뒤 “이곳은 식사하는 곳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나 갤러리처럼 내밀한 감성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건 철학적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저자는 미각적 즐거움과 순수 미학적 즐거움의 관계는 무엇인지, 기술과 예술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먹기 위해 무언가 만드는 일을 ‘순수 예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등을 철학적으로 탐구했다.

니체, 파스칼, 루소 등 대부분의 철학자가 ‘먹는 행위’를 인간의 욕구로만 관찰했다. 반면 칸트는 예술 개념을 ‘무언가 창조하는 것’으로 정립하면서 독창성, 보편성, 재현성, 자아와 지식의 확장성 등을 요건으로 제시했다. 저자는 엘불리의 요리가 칸트의 예술 개념을 모두 담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엘불리의 요리 중 하나인 ‘토마토 텍스처’는 토마토로 된 젤리, 에어무스, 아이스크림 등을 한 접시에 모은 요리. 모두 토마토 맛이란 보편성과 모두 미각적 느낌이 다르다는 창의성이 이 요리를 통해 분출된다.

또 엘불리 요리 속 메추리알은 한입 깨물면 캐러멜 맛이 난다. 모양만 알 형태일 뿐 사실 캐러멜이다. 메추리알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메추리알이 아닌 맛이 나오면서 웃음, 놀라움 등 감정이 생긴다.

엘불리 요리 거위 간 가루는 침과 닿으면서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먹자마자 입속에는 남는 것이 없어지는, 즉 물질적인 것이 사라지면서도 비물질적인 거위 간 맛만 혀에 남는다.

저자는 엘불리의 요리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 개념을 적용한다. 즉, 음식의 질감이나 요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원재료를 새롭게 변형시키거나 다른 형태의 음식으로 창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기존 철학에서 먹는 행위는 대상(요리)과 우리 몸 사이에 어떤 매개요소가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고 봤다. 혀가 음식에 닿으며 맛이란 미각을 느끼는 과정은 본능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회화의 경우 시각과 감정 사이에 ‘이미지’란 요소가 매개되면서 감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예술이 된다고 평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엘불리의 요리가 외형으로 기대되는 맛과는 완전히 다른 요리를 추구함으로써 맛을 보는 동시에 단순한 영양 섭취란 본능을 넘어서는 웃음,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이 생기고 이 감정들이 매개요소가 되면서 예술로 승화된다고 결론 내린다.

저자의 논리가 머리 아프지만 책 곳곳에 담긴 수십 장의 엘불리 요리사진이 위안을 준다. 다만 요리 사진이 아름답다 보니 예술 조형물이라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철학 이야기에 혹사된 뇌가 ‘라면이나 끓여라’는 지시를 수시로 내려 고민스럽다. 이 본능을 극복하고 책을 덮으면 죽기 전에 꼭 한 번 엘불리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엘불리는 요리 연구를 이유로 2011년부터 휴업 중. 언제 문을 열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엘불리의 철학자#엘불리#음식#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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