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단통법 특단 대책”… 업계 소집해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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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커지자 책임 떠넘기기

“정부가 주문하는 자리였다.”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이동통신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 관계자는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단통법의 부작용으로 가계통신비가 ‘상향 평준화’ 됐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대안을 모색하자며 이날 기업인들을 긴급 소집했다. 하지만 정부 측의 주장을 사실상 강요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 관계자는 “단통법을 입법한 국회가 정부로, 정부는 다시 기업으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정부, 기업에 ‘으름장’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소비자가 아닌 기업의 이익을 위해 단통법을 이용한다면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도 “이윤 추구가 목적이라 해도 소비자의 신뢰를 상실하면 기업은 더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하성민 SK텔레콤 사장, 남규택 KT 부사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박종석 LG전자 사장 등 이통사와 제조사 고위 임원들이 참석했다.

모두발언 후 비공개로 전환돼 90여 분간 이어진 간담회에서 정부 측은 이통사에는 보조금 상향 조정과 통신비 인하를, 제조사에는 출고가 인하를 강하게 주문했다.

행사가 끝난 후 최 장관은 “이통사, 제조사 분들과 충분히 소통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참석자들의 느낌은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분위기가 정말 썰렁했다”고 전했다. 정부 측이 간담회의 내용을 알리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소비자의 원성이 높다고 해도 기업인들을 이렇게 급하게 소집해서 윽박지르는 건 비정상적 관치(官治)”라며 “법이 부작용을 낳는다면 후속 정책과 개정 입법으로 해결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주한 미래부 통신정책국장은 “정부와 기업들의 소통이 활발한 자리였다”며 “기업이 단통법에 대한 오해와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발표해 달라는 정부의 부탁을 수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기업들 “단기간에 대책 마련 쉽지 않다”

정부는 이날 기업인들에게 “회사별로 ‘대국민발표’를 가까운 시일 안에 해 달라”고 했다. 사실상 ‘지시’를 받은 해당 기업들은 고민에 빠졌다. 단기간에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제조사 고위 관계자는 “출고가는 원가와 인건비, 연구개발비 등이 반영된 전형적인 ‘비탄력적’ 가격이라 정부가 압박한다고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행사 후 기자와 만난 하성민 SK텔레콤 사장도 “(대책 마련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단통법 이후의 이통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엇갈린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간담회 보도자료와 함께 발표한 ‘단통법 2주 차 시장 분석’ 자료에서 “중고폰과 저가요금제 가입자가 크게 늘어 법 시행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소비자가 신규 스마트폰 구매를 포기하는 건 그만큼 혜택이 줄어든 방증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점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이날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단통법은 ‘단지 통신사만을 위한 법’이란 비판을 듣는 만큼 하루속히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며 개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단통법을 대표발의한 같은 당 조해진 의원은 “부분적인 보완 조치는 가능하지만 법 자체의 골격을 바꾼다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김지현·홍정수 기자
#단통법#이동통신#단통법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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