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돌보듯 아이돌 챙겨주기? 매서운 치맛바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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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엄마팬’ 시대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 ‘카트’에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도경수)가 나온다. 제작사인 명필름은 디오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진 후 클라우드 펀딩(인터넷을 통한 개인 모금 방식)으로 제작비를 모았는데 한 달 만에 당초 목표액 5000만 원을 훌쩍 넘긴 8700여만 원을 거둬들였다. 기부자의 88%는 여성, 연령별로는 10∼30대가 전체의 87%를 차지했다. 팬들이 디오의 연기 경력을 쌓아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아이돌 팬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소녀팬에서 이모팬을 거쳐 ‘엄마팬’의 시대가 열렸다. 엄마팬들은 팬 활동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랜(LAN)선맘’으로, 좋아하는 스타를 ‘랜선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부른다. 때론 아이돌의 미래까지 치밀하게 계획해 지원하는 ‘유사 육아’의 모습을 띠는데 도를 넘는 극성스러운 활동은 ‘맘질’로 불린다.

엄마팬들은 아이돌의 ‘스펙’에 도움이 될 만한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물론이고 관계자들에게 선물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MBC 월화드라마 ‘야경꾼일지’에는 동방신기의 멤버 유노윤호(정윤호)가 주연급으로 나온다. 유노윤호의 팬들이 모인 한 인터넷 게시판은 8월 초 제작진 전원에게 각종 세면도구 150세트부터 단체 티셔츠, 바닷가재와 스테이크가 포함된 뷔페까지 선물했다. 드라마의 메인 PD에게는 별도로 고가의 샴페인과 전문 화가가 그림을 그린 합죽선, 건강보조식품을 전달했고, 작가에게는 도자기 브랜드의 다기 세트와 고급 녹차를 따로 선물했다. 아이돌 팬페이지를 운영한 최모 씨(26)는 “아이돌 멤버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팬들이 ‘내 멤버’를 잘 봐달라는 뜻에서 돈을 모아 작가와 PD, 제작진에게 선물한다”며 “실제로 출연 분량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아이돌 멤버 여럿이 출연할 경우 경쟁이 붙기도 한다”고 전했다.

극성스러운 치맛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스타의 방송 출연분을 모니터링해 분량이 적거나 부정적으로 등장할 경우 조직적으로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는 식이다. 또 나쁜 소식이 퍼질 경우 포털 사이트의 연관 검색어에 부정적인 단어가 뜨지 않도록 아이돌 이름과 다른 긍정적인 단어를 검색하는 이른바 ‘검색어 정화운동’을 펼친다. 최근 엑소 멤버인 타오의 연애 스캔들이 터지자 엄마팬들은 ‘타오 여자친구’ 같은 검색어가 뜨지 않도록 ‘타오 정법(정글의 법칙)’ ‘타오 무술’ 등 최근 출연 프로나 특기 같은 검색어를 집중 검색했다.

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는 “엄마팬들은 사회생활 경험이 있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이를 지원할 능력도 있다”며 “아이돌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려는 강력한 집단의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 30대 미혼 여성들이 아이돌 팬덤을 통해 일종의 ‘엄마놀이’를 하는 것”이라며 “이들은 엄마의 지원과 보호, 관리 아래 자라온 세대로 자기가 경험한 모성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이돌#엄마팬#랜선맘#도경수#유노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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