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유럽 이어 美-獨까지… 글로벌 ‘D의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유행병처럼 번지는 低성장 - 低물가

저성장·저물가 현상이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전염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가 동시다발적인 침체의 길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골병이 든 유럽, 일본뿐 아니라 미국, 독일 등 ‘경제 우등생’으로 꼽히던 국가들마저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며 세계경제가 동반 침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 증시는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6일 코스피는 전날 미국과 유럽 증시가 급락한 영향으로 장중 한때 1,900 선이 위협받는 등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미 금리를 낮출 만큼 낮춘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무력감에 빠진 분위기다.

○ 전 세계 덮친 ‘저물가 바이러스’

최근 나타난 위험 신호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일본,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5일(현지 시간) 미국 정부는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달보다 0.1% 떨어졌다고 밝혔다. 미국의 생산자물가 하락세는 지난해 8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달 소매판매가 0.3% 줄어드는 등 수요 감소가 물가 하락을 부채질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래전부터 저물가로 골치를 썩고 있는 유로존은 9월 물가상승률이 작년 동월 대비 0.3%로 디플레이션의 문턱 바로 앞에 와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일부 회원국은 이미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올해(1∼8월) 물가가 2.7% 올라 표면적으로는 지난해(0.4%)보다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4월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효과여서 이 부분을 빼면 여전히 상승률이 0%대로 추정된다.

신흥국들도 물가 상승세 둔화의 예외가 아니다. 중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6% 상승하는 데 그쳐 올 들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같은 중국의 물가지표가 공개되자 국제 금융계에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당국이 향후 추가 부양책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인도 역시 9월 물가상승률이 2012년 1월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물가 상승률도 어느 한쪽이 둔화되면 교역 경로를 통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차 전염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원자재 가격이 바닥 수준까지 떨어진 것도 이 같은 ‘저물가의 악순환’에 일조하고 있다. 수요 부진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이 물가 수준을 내리고 이는 다시 경기 부진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각국의 원유 수요 부진에 따라 15일 거래된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5달러 이하로 떨어지며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 정책수단 바닥난 중앙은행들

문제는 각국 정부가 세계경제의 동시다발적 침체에 별다른 ‘특효약’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 유럽 일본은 이미 정책금리를 더 내릴 수 없는 한계수준까지 떨어뜨렸다.

한국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기준금리가 연 2.00%로 제로 수준인 선진국과 차이가 있지만 자본 유출 우려를 감안할 때 당국이 내릴 수 있는 정책금리의 하한선은 1%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물가상승률이 오르기는커녕 계속 낮아지는 상황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최근 “물가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구조적인 변화가 있었다”며 고령화와 만성적 수요 부진 등 몇 가지를 이유로 들었다.

중앙은행들의 대응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정이 가장 급한 유로존은 제로금리에 이은 ‘유럽판 양적완화(QE)’의 도입을 모색 중이다. 재정을 풀어서라도 물가를 떠받쳐야 한다는 계산이지만 이는 재정긴축을 주장하는 독일의 강력한 반대, 또 유럽연합(EU)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쉽지 않다. 다만 독일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나란히 1% 안팎으로 후퇴한 상황이라 반대할 명분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이달부터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금리 인상을 위한 본격적인 채비에 들어가는 미국도 이런 세계경제 상황을 고려해 인상 시기를 당초 예상됐던 내년 중반에서 내후년 초로 늦출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박민우 기자
#세계경제#저성장#저물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