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 정기를 담았다, 58시간 1000km 격랑과의 ‘死鬪’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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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독도 레이스’ 7회 대회 열려

2014 코리아컵 국제 요트 대회에 참가한 요트들이 독도 인근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제7회를 맞이한 이번 대회에는 독도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인쇼어(in shore)’ 경기가 신설됐다. 코리아컵 국제 요트 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2014 코리아컵 국제 요트 대회에 참가한 요트들이 독도 인근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제7회를 맞이한 이번 대회에는 독도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인쇼어(in shore)’ 경기가 신설됐다. 코리아컵 국제 요트 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한글날인 9일 독도 정상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렸다. 아리랑이었다. 그러나 흔히 듣던 아리랑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29)가 편곡한 ‘지혜 아리랑’이었다. 청중은 독도경비대와 관광객들, 그리고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서 500km 가까이 거친 파도를 뚫고 온 ‘2014 코리아컵 국제 요트 대회’ 참가자들이었다.

이 대회 참가 선수 168명은 박 씨가 세계 3대 명기로 손꼽히는 1975년산 ‘과르네리’로 연주하는 아리랑을 들으며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폭풍을 뚫고 온 대가였다. 폭풍이 지난 이날 새벽 독도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멋진 일출도 선물했다. 러시아 미국 캐나다 페루 뉴질랜드 등 총 14개국 20척이 참가한 이 대회의 일정은 거친 파도와 태풍 때문에 하루 늦춰졌다. 이 때문에 당초 울릉도에서 하루 묵을 예정이었던 선수들은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독도로 향했다.

올해 대회는 사실 개최부터 쉽지 않았다. 원래 5월에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 참사로 일정이 미뤄졌다. 심민보 대회조직위원장은 “어렵게 대회가 열렸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이번 대회가 안전한 대회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계속 대회가 성공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바다 위의 대장정

코리아컵 국제 요트 대회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거세지면서 요트인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돌아오는 요트 대회를 만들자”고 뜻을 모으면서 시작됐다. 2008년 10월 경북 포항시에서 출발하는 첫 대회가 열렸고 이번이 7회째다. 처음부터 ‘독도를 수호하자’는 취지로 시작됐기 때문에 요트인들은 이 대회를 ‘독도 레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 위원장은 “당시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하는 등 독도 침탈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던 상황이었다”며 “문화관광부와 포항시의 지원을 받아 첫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뒤 3회 대회를 시작으로 5∼7회 대회는 계속 울진에서 출발하고 있다. 4회 대회는 포항에서 출발했다.

올해 외양(外洋) 경기 참가 선수들은 울진 후포항을 출발해 울릉도와 독도를 거쳐 다시 후포항으로 돌아오는 58시간 마라톤 항해 레이스를 펼쳤다. 직선거리로는 470km 정도이지만 똑바로 나아갈 수 없는 요트 특성상 실제로 선수들은 1000km가 훌쩍 넘게 항해했다. 서울∼부산 왕복 거리를 뛰어 넘는 거리다. 이 대회가 ‘바다 위의 대장정’으로 불리는 이유다.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외양 경기 첫 코스는 후포항을 출발해 울릉도를 향해가는 직선거리 160km 코스(1구간)다. 약 19시간이 걸린다. 7일 후포항을 떠난 14개국 20개 팀 선수들은 8일 새벽 울릉도에 도착하며 이 구간 경기를 마쳤다. 그러고는 이날 오후 11시에 다시 독도로 향했다. 11시간이 걸려 직선거리 80km를 항해하는 이 구간은 ‘우정의 퍼레이드’로 불린다. 선수들이 다음 날 독도를 떠나 다시 후포로 돌아오는 160km 코스(2구간)를 항해하는 데는 대략 28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모든 요트 경기가 그렇듯 출전 선수들은 대회 기간 내내 자신과 험난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배 안에는 따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선실이 갖춰져 있고, 간단한 취사도 가능하지만 망망대해를 헤쳐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바람, 파도와 맞서야 하는 건 기본이고 제대로 잠을 자기도 어렵다. 순위 경쟁이 치열해지면 휴식 시간도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독도로 향하는 항로는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은 것으로 요트인들 사이에 악명이 높다.

김철진 대한요트협회 홍보이사는 “험난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며 “특히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우리 땅 독도에 도착할 때 느끼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게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의 묘미”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부터는 독도 주변 바다를 한 바퀴 도는 ‘독도 인쇼어(Inshore)’ 경기도 열려 의미를 더했다.

평등한 퍼레이드

이번 대회 종합우승은 러시아의 티뷰론팀이 차지했고 한국 선수 7명이 참가한 ‘챔피언’팀은 독도 인쇼어 경기와 함께 독도에서 후포항까지 순위를 다투는 2구간 경기에서 1위에 올랐다. 사실 이 구간에서도 ‘챔피언’은 3위로 결승선에 도착했다. 그러나 규칙 점수계산방식(ORC Handicap Rating)에서 가장 빨라 2구간 1위가 됐다.

결승선 통과 시간과 실제 순위가 다른 건 요트 대회에 참가하는 배가 각기 규모와 항해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요트 대회 때는 ORC(Offshore Racing Congress)라는 협회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핸디캡을 준다. ORC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배의 길이, 돛의 크기 등을 토대로 만든 공학적 기준에 따라 핸디캡을 정한다.

대회조직위원회 이운학 기획팀장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 경주를 한다고 하자. 그러면 경차보다 스포츠카가 먼저 도착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 차이를 보정하는 작업”이라며 “ORC급(클래스)에서 우승해야 공인된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려면 미리 ORC에 배를 등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ORC 기준이 없는 배는 조직위에서 정한 핸디컵 기준을 따르는 ‘오픈클래스급’에 참가하게 된다. 오픈클래스에서는 러시아팀 헬레나와 디시즌이 각 1, 2위를 차지했고 스위스 인도 프랑스 선수들이 연합팀을 꾸린 에델바이스가 3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이달 말 MBC스포츠플러스와 아리랑TV 등 국내 방송은 물론이고 미국의 폭스 스포츠 방송을 통해 해외에도 방송될 예정이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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