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家具名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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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갤러리 대표 김장회-태민씨 父子, 代 이어 기능올림픽 수상… ‘가구의 길’로

13일 오후 경기 김포시 우드갤러리 공장에서 이 회사 대표인 가구 명인 김장회 씨(오른쪽)와 아들 태민 씨가 같이 가구를 만들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13일 오후 경기 김포시 우드갤러리 공장에서 이 회사 대표인 가구 명인 김장회 씨(오른쪽)와 아들 태민 씨가 같이 가구를 만들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의미 없는 대학생활을 하기는 싫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그 분야에 집중해서 전문성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13일 경기 김포시 대곶로 ‘우드갤러리’ 공장.

이 회사 대표 김장회 씨(50)와 아들 김태민 씨(27)가 테이블 위에 놓인 목재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민 씨는 아버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쫑긋 세웠고, 두 사람은 선생님과 제자처럼 품질 좋은 가구를 만드는 방법을 놓고 치열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 씨 부자(父子)는 국제기능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대(代)를 이어 같은 종목(가구 제작)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모두 입상한 ‘마이스터 가문’이다. 태민 씨는 인문계 고교를 졸업하고 1년 가량 대학을 다니다가 아버지를 따라 가구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태민 씨는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가구를 만드는 게 훨씬 재미 있었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 씨는 인문계 고교를 다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접고 가구공장에 들어가 기술을 배웠다. 남다른 성실성으로 금방 두각을 나타낸 김 씨는 1985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 30년 가까이 국내 최고의 가구 기술자로 명성을 떨쳐왔다.

“내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긴 싫었지만 아들이 의외로 적극적으로 달려들더군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아 조금씩 가르쳐주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김 씨는 아들이 대학에서 번듯한 공부를 하기를 원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이뤄주길 바랐던 것. 그러나 아버지의 유전자는 아들에게도 살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서랍장 등 자그마한 가구들을 뚝딱 만들어내던 아들은 재수 끝에 입학한 대학까지 포기하고,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겠다고 나섰다. 2007년 아들의 나이 스물일 때였다.

김 씨가 “기술을 배우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며 극구 반대했지만 태민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 김 씨도 마지못해 허락했고, 아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다. 결국 태민 씨는 2년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2009년 캐나다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당당히 우수상을 탔다. 국제기능올림픽은 만 22세까지만 출전이 가능하다.

김 씨 부자는 우드갤러리를 자체 공장과 전국 50여 개 대리점 및 지사를 갖춘 강소기업으로 키워냈다. 2009년부터는 자체브랜드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도 선보이고, 친환경 원목가구를 시장에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 씨 부자는 “우리 회사에 청년들이 많이 와서 기술을 배우고,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청년들의 터전’으로 만들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김포=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우드갤러리#기능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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