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성장엔진, 재정 - 통화로 쌍끌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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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年2.0%로 사상 최저… 경기부양 효과 한풀 꺾이고
글로벌 침체 우려까지 겹치자… 韓銀 ‘崔노믹스’ 지속 필요성 공감
美와 금리差 줄어 자본유출 가능성… 가계 부채 위험성도 더 커져

한국은행이 15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큰 폭으로 내리고 기준금리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춘 것은 안팎의 악재에 신음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실물 부문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내수와 투자의 부진이 이어지고, 금융시장 측면으로는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 속에서 외국인의 ‘셀코리아’가 가속화되는 위급한 상황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이날 금리인하는 강력한 경기부양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의 압력에 한은이 마지못해 굴복한 듯한 인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저성장·저물가가 장기화되는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한은도 정부와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 재정·통화 묶은 현 정부의 3차 ‘폴리시믹스’

이날 정책금리의 인하로 정부와 한은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째 정책 공조에 성공했다. 처음은 지난해 4월 현오석 경제팀이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이에 보조를 맞춘 한은이 한 달 뒤 금리인하에 나섰던 때였다. 비록 금리 조정의 타이밍을 두고 정부와 한은 간에 엇박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당시의 정책대응은 작년 하반기 경기가 ‘턴 어라운드’하는 데 지렛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는 올해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직후 26조 원의 재정을 연내에 풀기로 하고 곧이어 8월에 한은이 금리인하로 화답했을 때였다. 당시 정부는 재정·통화정책 외에도 경기부양을 위한 세제·예산안, 부동산 규제 개선 등 동원 가능한 대책을 전방위적으로 쏟아냈다. 이에 따라 자산시장과 소비심리도 어느 정도 회복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최경환 효과’는 유럽의 경기둔화와 엔화 약세, 기업실적 악화 등의 영향으로 오래가지 못했고 특히 기업투자와 물가지표는 정부 정책이 무색할 정도로 침체를 이어갔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주 5조 원 규모의 추가부양책을 내놓고 한은의 추가 ‘협조’를 강력히 주문했다. 이를 계기로 ‘중앙은행 독립성 논란’이 다시 불붙었지만 정부로서는 꺼져가는 회복의 불씨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이번 금리인하로 한은이 결국 이런 요청을 전향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러 대책들이 나왔지만 아직도 경기회복세를 체감하기에는 그리 강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이날 금리인하는 이전처럼 폴리시믹스(policy mix) 형식으로 묶여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더욱 선명히 해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9월 말에 나온 산업활동 지표가 매우 안 좋았고 수출 등 실물지표나 대외 여건도 흐름이 나쁘다”며 “이러다 ‘최노믹스(최 부총리의 경제정책)’ 효과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던 와중에 정책 효과를 지속시킬 필요가 있다는 데 한은이 공감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 금리인하 ‘무용론’, ‘실기론’도 만만치 않아

다수의 긍정적 반응에도 불구하고 금리인하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실물경제를 뒷받침할 만한 두드러진 효과도 없이 가계부채 등 금융시장의 위험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8월 금리인하 이후에도 소비심리나 설비투자 지표는 반등은커녕 정체 또는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증시에서도 금리인하의 효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세로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국경제가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돈이 실물로 가지 않고 금융권 내에서만 빙빙 도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하의 효과가 예전만 못한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금리인하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며 좀 기다려 봐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금리인하가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를 키울 소지도 높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대출규제가 완화된 8월 이후 두 달 동안 가계대출은 11조 원가량 급증했다. 여기에 금리가 낮아져서 가계 빚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지면 향후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시장금리가 덩달아 올랐을 때 대출 상환 부담이 눈에 띄게 불어날 우려가 크다. 금리인하로 미국과의 금리 차가 좁혀지면 국내 주식과 채권에 대한 매력이 떨어져 자본유출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은이 이런 부작용들을 걱정하기 이전에 미리 금리를 내렸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정책금리 인하는 빠르고 강력하게 해야 효과가 있는데 정부에 떠밀리듯 하니까 정책 효과도 떨어지고, 한은의 독립성에도 흠집이 났다”고 비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리인하의 효과는 크지 않겠지만 금리를 안 내리면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며 “앞으로는 한은이 주도적으로 추가 금리인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2.0%는 경기회복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라며 추가 인하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경기부양#최경환#금하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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