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카제 전투기에 열광하는 日청년들, 정작 조종사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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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원의 제로’ 포스터
영화 ‘영원의 제로’ 포스터
지난해 8월 일본 히로시마(廣島) 현 구레(吳) 시 '야마토(大和) 박물관'. 실물을 10분의 1로 축소한 야마토 전함 앞에서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야마토 전함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건조한 세계 최대급 전함이다.

야마토 전함과 함께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은 또 하나의 인기 전시물은 바로 제로센.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한 전투기 앞에서도 카메라 플레시는 쉴 새 없이 터졌다. 아이들은 "와~" 소리를 지르며 동경의 눈빛으로 제로센을 둘러봤다.

최근 제로센이 전쟁 혹은 군사 박물관 뿐 아니라 평화 박물관에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오이타(大分) 현 내 평화박물관이 문을 열며 중앙 홀에 제로센을 배치했다. 도쿄(東京) 다이토(台東) 구에 있는 국립과학박물관도 항공기술의 발전을 소개하며 제로센을 전시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태평양에서 건져 올린 제로센을 기증받아 전시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제로센의 실물이나 모형은 전국 11개 주요 박물관 및 역사관 등에 전시돼 있다. 평화박물관에서조차 제로센이 배치되는 이유는 방문객의 발길을 끌기 위해서다. 하지만 신문은 "방문객 유치 효과는 분명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실제로 보니 멋지다'라고 반응해 젊은 세대에게 전쟁 실상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인들이 제로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설 '영원의 제로'(2006년 발간)가 큰 역할을 했다. 전쟁 때 자살특공대로 출격해 사망한 조부의 인생 역정을 추적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소설은 지난해 12월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때부터 일본 젊은이들은 제로센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제로센을 타고 목숨을 걸었던 특공대의 평가는 다르다. 올해 92세인 데즈카 히사시(手塚久四) 씨. 그는 도쿄대 2학년이었던 1943년 학도병으로 해군에 입대했다. 1945년 2월부터는 제로센을 탔다. 데즈카 씨는 15일 보도된 도쿄신문과 인터뷰에서 "인간을 폭탄 대신 사용한 자살특공을 절대 미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하고 집단자위권 행사를 강행 통과시킨 현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며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잘못을 반복한다"고 지적했다.

다나카 미쓰나리(田中三也·90) 씨는 태평양전쟁 때 적함을 찾는 정찰기를 몰았다. 하지만 친구들 상당수는 제로센을 모는 자살 특공대였다. 다나카 씨는 도쿄신문에 "특공대원들은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부터 고향인 지바(千葉) 현에서 과거의 체험담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며 "목숨을 소중히 여기라"고 조언하고 있다.

태평양전쟁 때 제로센 조종사로 적 항공기 19대를 격추한 하라다 가나메(原田要·98) 씨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걸프전 때 다국적군의 공격 장면을 젊은이들이 마치 불꽃놀이 같다고 표현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전쟁의 죄악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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